“고려증권 마지막 단장 별세”…이규소, 한국 남자배구 전설→83세로 삶 마감
그 이름만으로도 배구장 한켠에 묵직한 울림을 남겼던 이규소 전 감독이 향년 83세를 끝으로 굴곡진 역사를 뒤로했다. 슈퍼리그의 환호, 국가대표팀의 치열한 승부, 그리고 배구 명문 고려증권의 영광—이규소의 삶은 늘 배구와 함께였고, 그 여정은 한국 스포츠에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선수로, 또 지도자로 남자배구를 관통한 이규소 전 감독은 인창고와 해군, 한국전력에서 세터로 코트를 밟았다. 지도자의 길로 접어든 후에는 1972년 뮌헨 올림픽 코치,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감독으로 은메달을 거머쥐는 개가를 올렸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홈 팬들 앞에서 대표팀을 지휘하며 한국 남자배구의 중심을 지켰다.

무엇보다 고려증권이라는 이름 아래 1986년부터 총감독 겸 단장으로 부임해 슈퍼리그 6회 우승이라는 시대의 본보기를 남겼다. 현대자동차써비스와 나란히 실업 배구의 양대 산맥을 이루며, 이규소의 리더십은 한동안 배구계를 압도했다. IMF 외환위기로 팀이 해체되던 1998년까지 마지막 단장으로 자리를 지켰다는 점 역시 그의 깊은 책임감을 보여준다.
박주점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장은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과 고려증권 단장으로 이끌었던 산증인이었다”며, 그가 아시아 정상권 도약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회고했다. 이규소의 이름 아래 세대와 시대를 관통한 노고는 남자배구 발전사의 거대한 도약을 힘주어 떠올리게 한다.
스포츠계는 이규소 전 감독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보내고 있다. 시간을 뛰어넘어 전설이 된 지도자, 그의 유산은 후배들에게 영원한 가르침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힘 있게 번지고 있다.
서늘한 체육관 한편에 스민 노장의 땀과 열정은 세월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다. 경기장의 조명이 꺼진 밤, 남겨진 제자들과 팬들의 기억 속에서 이규소라는 이름은 언제나 용기와 격려로 남아 있다. 그가 이끈 남자배구의 찬란했던 시절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야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