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외자 늦게 인지한 유공자 급여 환수는 부당”…중앙행정심판위, 개인사정 고려 판결
가족관계 변경을 이유로 국가유공자에게 이미 지급된 무의탁수당을 환수하는 문제를 두고 행정기관과 유공자가 정면으로 맞섰다. 혼외자 인지 등 사실관계 변경에도 불구, 중대 과실이 없는 한 보훈급여 환수는 위법하다는 행정심판 결정이 나오면서 제도 운용 방향이 주목된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9월 4일, 전상군경으로 등록돼 무의탁수당을 받아온 A씨가 보훈지청의 환수 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심판에서 ‘환수 처분 취소’ 결정을 내렸다. 앞서 A씨는 2009년부터 무의탁수당을 받아왔다. 무의탁수당은 경제적으로 곤란한 부양 가족이 없는 국가유공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A씨의 혼외 자녀들이 공식적으로 법적으로 인정되면서 그의 가족관계가 바뀌었다.

보훈지청은 이에 따라 그간 지급된 수당 중 5년간의 급여 1천62만원을 환수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A씨는 자녀 인지 직후 신속히 관할 보훈지청에 관련 사실을 신고, 부정수급 의도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또 고령에 지병까지 앓고 있는 점 등을 들어 환수 처분에 항의했다.
중앙행심위는 관련 자료 검토 끝에 “지급 당시 가족관계증명서 상 자녀가 없어 수당 수령 자체는 합당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A씨가 중대한 고의 또는 과실 없이 자녀를 뒤늦게 인지했고, 직후에 행정기관에 알렸다”며, 생계 위협 가능성도 고려해 “금전 환수는 부당하다”고 밝혔다.
조소영 중앙행심위원장은 “이번 재결은 법의 취지와 부양가족의 실제 여부뿐 아니라 개인 사정까지 입체적으로 따져 환수 처분의 정당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사례”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결정을 두고 사회안전망의 섬세한 적용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제도 남용 방지 대책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도 “국가유공자 처우에 대한 원칙과 세부 운영에 관한 기준점이 제시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중앙행심위 결정에 따라 향후 보훈급여 환수 절차에도 개별 사정과 실질적 ‘부양 가능성’이 어디까지 고려될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러한 판례를 바탕으로 관련 행정지침 개정 여부를 논의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