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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하늘 아래 걷는다”…역사와 자연을 품은 청주의 여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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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하늘 아래 걷는다”…역사와 자연을 품은 청주의 여름 산책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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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흐린 하늘 아래에서도 낯설지 않게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이제는 땀 한 방울 적셔도 일상의 쉼을 위해 길을 나선다. 사소한 변화지만, 삶의 리듬을 다시 쓰는 작은 모험이 되고 있다.

 

청주는 여름날의 온기와 구름이 뒤섞인 도시다. 청남대는 대통령의 시간과 호수 너머의 풍경이 하나가 되는 곳. 드넓은 정원 사이 산책로를 따라가면 습도 높은 공기 속에도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지금의 나는 대통령별장에 소풍 온 사람일 뿐”이라는 여행자의 농담처럼, 이곳에서 누구든 시간의 여행자가 된다. 잔잔하게 이어지는 호숫가 길, 각기 다른 테마로 꾸며진 정원과 기념관이 천천히 풍경에 녹아든다.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정북동 토성의 추억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정북동 토성의 추억

청주랜드동물원을 찾은 가족들은 도시 한가운데서 동물들의 숨결을 느낀다. 잘 정돈된 공간 곳곳에서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동물마다 이름을 읊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눈에 띈다. “어릴 적엔 동물원에 가는 게 큰 이벤트였는데, 이젠 가까이에서 소소하게 즐길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도심의 번잡함을 잠시 놓고 동물들의 여유를 보는 시간, 작은 힐링의 순간이 된다.

 

수암골 골목길은 또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한때 피란민들의 삶이 오롯이 남았던 좁은 골목과 지붕들은, 이제는 벽화가 입혀져 예술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진 뒤로는 사진을 찍으며 걷는 청춘들의 모습도 많아졌다. 사람들이 말한다. “평범했던 길이 예술이 되고, 마을이 추억이 되는 여행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고. 골목마다 숨어있는 그림을 찾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런 변화는 누구나 체감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관광 동향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가족 단위 여행객과 소규모 산책 여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휴식의 의미가 ‘머무르는 공간을 바꾸는 일상적인 여행’으로 확장된 데 주목한다.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는 “자연을 걷거나 낯선 골목을 돌며 일상의 틈을 만들어내는 것이 최근 여행의 본질”이라고 해석했다.

 

여행 커뮤니티에는 “별 거 없어 보여도 막상 걷다 보면, 마음이 다시 편안해진다”, “아이와 함께라 더 특별한 하루였다”는 공감의 댓글이 이어진다. 여름휴가를 멀리 떠나지 못해도, 가까운 도시의 풍경이 새로운 위로를 안기는 순간이다.

 

청주의 여름은 그저 지나가는 계절이 아니다. 때로 땀이 나고, 때론 구름이 짙어져도 천천히 걸으며 새로운 하루를 부른다. 작고 사소한 나들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바쁘게 흘러가던 시간에 쉼표를 찍는다. 지금 이 변화는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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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청남대#수암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