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물길 따라 역사 따라”…영월에서 만나는 가을 산책의 정취
라이프

“물길 따라 역사 따라”…영월에서 만나는 가을 산책의 정취

오예린 기자
입력

요즘 누군가는 물가를 따라 걷는다. 익숙한 도시를 벗어나 강원도 영월로 향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과거에는 묵직한 역사와 유배지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지만, 이제 영월은 자연과 시간, 그리고 사유의 결이 만나는 ‘걷기의 고장’으로 일상의 여행자가 찾는 곳이 됐다.

 

영월은 겹겹의 산세와 맑은 동강, 서강이 만들어내는 깊은 풍경으로 유명하다. 이른 가을, 포근한 날씨와 높아진 습도는 걷기에 딱 좋은 조건이다. 한반도면 옹정리의 강굽이는 우리나라 지도를 닮은 이색적인 지형으로, 숲길을 따라 산책하는 이들에게 남다른 인상을 남긴다. SNS에서는 “초록과 파랑이 뒤섞인 풍경이 마음을 씻어내 준다”는 인증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청령포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청령포

통계로도 자연 속 산책과 걷기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강원도청 관광통계에 따르면 2023년 영월 누적 방문객 수는 전년 대비 12% 늘어난 75만 명을 기록했다. 그중 절반이 넘는 이들이 동강·서강 등 자연 자원을 목적지로 삼았다. 아무 데로나 발길이 이끄는 식의 산책 여행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청령포는 조용하게 강에 안긴 곳으로, 단종의 유배 이야기가 오롯이 남아 있다. 강을 배로 건너야 닿을 수 있는 ‘섬 같은 육지’라서, 걷는 내내 나무와 물, 바람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직접 다녀온 이들은 “작고 묵묵한 돌탑에, 단종의 마음이 스며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동행한 가족, 친구와 조용히 사색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연을 따라 걷는 일이 단순한 관광을 넘어 자아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임유진 여행칼럼니스트는 “일상의 피로를 풀고 감정을 내려놓는 데, 자연 속 걷기가 가진 힘이 크다. 영월처럼 강과 숲, 별이 어우러진 장소는 더욱 그러하다”고 느꼈다. 지역 해설사 권모(52) 씨도 “가끔은 강 건너 물안개 사이로 유배길을 밟듯, 천천히 거닐어보라”는 조언을 전한다.

 

체험기를 남기는 여행자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물길 따라 걷는데, 마음이 가벼워져서 나도 모르게 숨을 깊게 쉬게 된다”, “별마로천문대에서 처음 은하수를 보고선 도시의 밤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는 후기들은, 영월이 준 감정의 변화에 공감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장릉의 소나무 숲길을 독특한 느낌으로 기억하는 방문객도 많다. 단종의 비운한 역사가 새겨진 곳이지만, 햇살 내린 풀밭을 따라 걷다보면 오히려 경건함과 평온이 밀려든다. 일상에 찌든 마음을 곱게 다잡을 시간, 블루밍한 자연의 품 안에서 조용히 생각이 익어간다.

 

자연과 역사가 느리게 흐르는 영월의 길 위에서, 누구나 작고 소소한 위로와 사색의 순간을 발견하고 있다. 여행은 끝났지만, 그때의 마음은 지금도 나와 함께 걷고 있다.

오예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영월#청령포#별마로천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