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도약한 한국, ODA 증액 기대”…빌 게이츠, 글로벌 역할 강조
공적개발원조(ODA) 확대를 둘러싼 국제 공여 책임과 개발협력 논의가 서울에서 다시 부상했다. 2025년 8월 21일, 한국을 방문한 게이츠재단 빌 게이츠 이사장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취재진과 만나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위상을 바꾼 한국이 ODA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촉구하면서다.
게이츠 이사장은 “한국의 ODA 예산이 국내총생산(GDP)의 0.3%에 못 미친다”며 “ODA 예산을 다시 한번 고려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그는 선진국의 평균적인 ODA 기여가 GDP의 0.4% 수준임을 언급하고, “GDP의 0.7%에 ODA가 도달할 나라는 많지 않다”면서도 “0.5%는 앞으로 5년 내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게이츠 이사장은 “ODA 중 가장 파급력이 큰 것은 국제다자보건기구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효율성이 우수하고 목표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게이츠재단은 중·저소득 국가 백신보급 등 보건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한국이 개발도상국 보건 증진에 더 큰 몫을 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역할 변화에 대해 그는 “한국은 과거 수많은 국제 원조를 받은 나라였지만, 지금은 선진국으로 전환해 ODA 공여국이 됐다”며 “다른 국가에 모범이 되고 있고,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경제 내부에 과제가 많다는 점도 인정했지만 “한국 역시 진단, 백신 분야에서 혜택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바이오 사이언스 분야 성장과 글로벌 협력에 대해 게이츠 이사장은 “한국의 바이오 사이언스 산업이 규모와 혁신 모두 급성장해왔다”고 전했다. 게이츠재단이 국제 백신연구소에 자금을 제공했으며, 한국 정부가 지원한 덕에 큰 성과가 얻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가 한국 바이오 사이언스에 투자한 금액이 4억 달러 조금 넘지만, 한국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혜를 얻고 있다”며 “선진국 중 이런 경우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국제개발처(USAID) 구조조정 논란에 대해서는 “미국의 ODA 예산이 삭감됐다가 점차 복원되는 추세”라며, “트럼프 대통령 및 행정부, 의회와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도약했고, 매우 강력한 민주주의를 갖춘 나라로 탈바꿈했다”며 “이 모습이 많은 국가에 교훈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기도 한 그는 2022년 이후 3년 만에 방한해 이재명 대통령 등 국내외 주요 인사들과 교류하며 한국 기업과의 협력 확대 방안도 모색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제기된 ODA 증액 요구는 정부의 중장기 대외정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ODA 예산 확대와 국제 보건 공여책임을 두고 첨예한 논쟁을 이어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