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영, 국화꽃 향기 머금은 16년의 그리움”…빛바랜 청춘에 시린 추억→끝내 닿지 못한 이별
가을 햇살이 무르익은 9월, 배우 장진영의 이름이 또 한 번 아른거린다. 드라마 ‘내 안의 천사’로 첫 발을 내딛은 이래, ‘반칙왕’, ‘소름’, ‘국화꽃 향기’와 같은 영화로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장진영은 스물일곱 꽃다운 시절부터 반짝이던 시간을 이어갔다. 미스코리아 진의 기품과 동시에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관객의 가슴을 흔들던 그였기에, 짧았던 생이 더욱 애틋하게 남는다.
생의 마지막까지 카메라 앞에 선 당당한 배우였던 장진영은 위암 투병이라는 청천벽력에 굴하지 않고, 향기로운 인생을 자신의 방식대로 완성했다. 종착역에 이르기 전 스스로 사랑을 선택해, 2009년 7월 미국에서 6살 연상 연인과 결혼식을 올리며 인간적인 행복을 누렸다. 그가 준비한 이별은 삶의 온기로 가득했고, 팬들에게 남긴 ‘국화꽃 향기’의 대사는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수상 기록마저도 화려했다. ‘소름’과 ‘싱글즈’,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등으로 청룡영화상,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굵직한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무대에서는 빛났지만, 삶의 이면에서는 조용하고 따뜻한 후원자로 남았다. 그는 자신의 호를 담은 ‘계암장악회’ 설립을 통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다는 뜻을 실천했다. 여기에 고향 임실과 모교 전주중앙여고, 지역 대학 등에 장학금을 수억 원 이상 기부하며 배우로서의 영광 너머 따뜻한 발자취를 남겼다.
장진영이 남긴 향기는 가족에게도 이어졌다. 2011년 고인의 뜻을 기리는 장진영 기념관이 전북 임실에 세워졌고, 사랑하는 딸의 소중한 추억을 지키려 애쓴 부친 역시 15주기 행사를 준비하던 중 기념관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슬픔을 더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꽃 향기는 바람에 남아 곳곳을 맴돈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스치듯 스크린을 밝히던 장진영의 미소와 따사로운 온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