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규제에 관세 경고”…트럼프, 한국 겨냥한 美 무역압박 본격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디지털 시장 규제로 미국 IT기업을 차별하는 국가에게 ‘관세’ 등 보복조치를 경고하면서 한국이 직접적인 타깃이 되고 있다.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 발표가 무산된 배경에도 양국의 디지털 규제 해소에 대한 이견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망 사용료,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정밀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등 핵심 정책의 향방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업계는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경고를 “글로벌 디지털 규제 경쟁의 분기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3일(현지시간) 보도된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의 분석에서 비롯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사전에 한국 정부에 디지털 규제 법안 포기를 공동성명에 명시하라는 요구를 전달했으나 한국이 이를 거절하며 양국 간 갈등이 불거졌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한미정상회담 직후 자신의 트루스소셜 채널에서 “미국 기술 기업들을 공격하는 국가엔 추가 관세와 첨단 기술 수출 제한 등 대응에 나서겠다”고 명확히 언급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 역시 망 사용료, 온플법, 지도 데이터 반출 제한, 클라우드 보안 인증제도를 한국의 주요 ‘디지털 장벽’으로 지목하고 있어 정책당국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기술적 쟁점별로 보면, ‘망 사용료’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국내 통신망을 무료로 사용하는 문제와 연결돼 있다. 국내에서는 망 이용 대가 징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미국 IT업계는 글로벌 시장의 자유로운 인터넷 접근이 훼손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온플법’은 국내 플랫폼과 이용자, 입점 소상공인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취지이지만, 구글·애플 등 미국 기업은 자사 서비스에 불리한 차별로 보고 있다. 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제한 역시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둘러싸고 정부와 IT 기업 간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린 사안이다.
이처럼 미국과 EU, 한국, 일본 등 주요국이 각각 디지털 규제 범위·방식을 달리하는 가운데 글로벌 IT거버넌스 주도권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유럽의 디지털시장법(DMA)에 대한 경고를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동시에, 한국이 EU 정책을 ‘추종’하는 1순위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EU도 “규제는 주권적 권리”라며 미국의 요구를 일축, 각국 간 디지털 정책 주도권 다툼이 더욱 가열되는 모습이다.
국내 정책 결정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다. 정부는 미국 우려를 반영해 플랫폼 거래공정화법과 독점규제법 분리 입법 등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으나 시민사회와 소상공인 단체는 온플법 입법 촉구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문제 역시 구글, 애플의 신청에 대해 정부가 기한을 연장하며 결단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 법·제도 문제를 넘어 “IT산업의 핵심 주도권과 국가 디지털 주권이 충돌하는 전형적 사례”로 분석한다. 특히 각국의 디지털 규제·자유화 정책 방향에 따라 무역, 첨단기술, 산업생태계 전체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산업계는 이번 미국의 압박에 한국 정부가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