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겸, 90년 인생을 담은 영화적 유산”…부산영화제의 숨은 뿌리→남겨진 시간에 묻는다
한 영웅의 그림자가 천천히 사라진 자리에는 그가 남긴 온기와 영화에 대한 깊은 사랑이 오래도록 진동했다. 영화감독 김사겸이 유가족과 영화계의 안타까운 작별 속에 영면했다. 그의 이름은 길을 걷는 듯 잔잔했지만, 한국 영화와 단편영화제,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안에는 분명히 각인돼 있다.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김사겸 감독은 진한 필름의 낯선 숨결을 마주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마산고 졸업 후 중앙대학교의 전신인 서라벌예대를 중퇴하며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섰다. 영화잡지 '영화세계'와 '영화예술'에서 피어나는 신문의 감각을 익혔고, 언론인으로도 일가를 이뤘다. 1963년 일간스포츠신문 기자를 거친 그는 영화의 현장으로 돌아갔으며, 유현목 감독의 연출부로 '순교자', '태양은 다시 뜬다', '공처가 삼대' 등에서 조용하지만 뜨거운 노력을 쏟았다.

무엇보다 김사겸 감독은 직접 카메라를 들고 메가폰 앞에 섰다. '그대 가슴에 다시 한번', '창수의 전성시대' 등의 연출은 그의 내면에 흐르던 영화적 신념의 직접적인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의 족적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감독은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재건과 회장직, 그리고 한국단편영화제(현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창립, 부산국제영화제의 창립 감사, 부산영상위원회 설립 등 현장과 제도를 아우르며 새 길을 냈다. 어둠 속에서 영광보다 기반을 다지는 길을 선택했던 그의 걸음은 분야 전체에 진한 잔상을 남겼다.
'영상적 사유, 영화적 인생', '영화가 내게로 왔다', '한국영화의 발자취' 등 남긴 저서는 세대를 관통하는 기록이자 후예들에게 남긴 소중한 유산이 됐다. 빈소는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과 장지는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짙은 필름의 어둠을 환하게 밝히던 김사겸 감독의 시간은 멈췄지만, 그의 영화적 신념과 열정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이어 나가는 길 위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