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공급망 불안”…클래리트로마이신, 글로벌 의약품 위기 촉발
항생제 클래리트로마이신의 원료약 시장 가격이 급등하면서 글로벌 의약품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이 부각되고 있다. 중국의 수출 제약과 미중 갈등에 의한 관세 압박이 맞물려, 필수의약품 공급망의 단일화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업계와 정책 당국은 이번 사태를 ‘제약 산업 안보 경쟁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해석하며, 공급선 다변화와 국가 비축체계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글로벌바이오헬스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7월 클래리트로마이신 시장은 전례없는 가격 급등을 기록했다. 특히 영국 시장의 경구용 현탁액은 평균 61%나 인상돼, 올해 들어 가장 높은 가격 변동을 보인 의료 원료 중 하나로 집계됐다. 클래리트로마이신은 세계보건기구(WHO)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된 대표적 마크로라이드 항생제로, 호흡기 감염과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치료에 널리 사용된다. 2023년 기준 클래리트로마이신 처방 비율은 글로벌 호흡기 감염 치료제 처방의 6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절대적인 비중을 갖는다.

중국의 수출 규제와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가 이번 공급망 불안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적된다. 중국산 원료의무에 대한 145%의 미국발 관세 인상과 수출 제한 조치로 인해,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시장은 조달 비용 급증과 구매 경쟁 과열을 겪고 있다. 글로벌 의료 조달 그룹들은 관세 리스크에 대비해 단기 대량 구매에 나서면서, 현지 소규모 조달 물량이 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아울러 컨테이너 부족과 항만 물류 병목 현상으로 배송 지연이 12~15일까지 길어지며, 기존 재고 관리 시스템만으로는 수급 불안을 해소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클래리트로마이신 글로벌 공급체인에서 중국 대체 조달선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점이 추가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보고서는 올해 4분기까지도 고원가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국가단위 대응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따라 각국 정책당국과 의료 조달기관들은 공급선 다변화와 재고 분산 관리, 전략적 제휴 확대 등 선제적 리스크 대응에 돌입하고 있다. 최소 2개 이상 독립적 공급선을 운영해 단일국가 의존도를 낮추고, 지역별 생산시설 상호보완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 정부 역시 WHO 필수의약품 기준 장기 비축제도를 토대로, 시장 위기 시 즉각 조달이 가능한 국가 예비물량 체계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 가격 상승을 넘는 제약 안보 위기”라는 평가도 있다. 공급망 혼란은 궁극적으로 환자 안전과 의료 현장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WHO 등 국제기구 역시 필수의약품 글로벌 비축기지 확대를 선제적으로 논의 중이다.
전문가들은 첨단 바이오 의약품 개발과 K-바이오 벨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 축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WHO 인력양성 허브 경험과 기술 이전 역량을 총동원한다면, 국내 제약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보건분야 국제 기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기회가 될 전망이다.
산업계는 이번 클래리트로마이신 공급망 이슈가 향후 다른 필수의약품에도 유사하게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결국 “필수의약품 자체 생산기반 강화와 글로벌 연대가 동시에 구축될 수 있느냐 여부가 제약주권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