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덮인 평야와 물소리”…철원에서 만나는 고요한 가을의 시작
가을이 문을 두드리자, 선선한 바람과 함께 철원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예전엔 멀고 특별한 여행지라 여겨졌지만, 이제는 가까운 산책과 휴식의 일상이 됐다.
철원은 휴전선과 인접한 탓에 한국 현대사의 자취를 곳곳에 품고 있으면서도, 드넓은 평야와 깨끗한 강, 천년 고찰이 전하는 깊이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른 아침 구름이 많은 하늘 아래로 펼쳐지는 평야 풍경은, 도시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고요함을 선사한다.
한탄강변에 자리한 고석정은 철원팔경 중 하나로 꼽히며, 깎아지른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맑은 강물이 빚는 경관에 머무는 이들의 눈길이 머문다. SNS에서도 ‘고석정 인증샷’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산책로를 따라 떠오른 강바람에 마음마저 시원해지는 기분. 바위틈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는 머릿속을 가볍게 하고, 누구나 자연스레 깊은 들숨을 내쉬게 된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국내 관광객들이 자연 경관과 역사, 명상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지역 소도시에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와 같은 자연 관광지의 방문율도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삼부연폭포의 세 줄기 시원한 물줄기는 주변을 환하게 적시며, 바위에 부딪히는 투명한 소리에 방문객들은 “마음이 씻기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옥수수가마솥을 닮은 세 바위 구멍에 물이 떨어지는 장면은 ‘자연이 직접 그린 예술’이라는 평가도 따른다. 폭포 주변의 숲은 어느새 가을색으로 곱게 물들고 있다.
도피안사는 한적한 산자락에 숨어 있다. 1000년 역사를 품은 고찰의 경내는 생각보다 소담하고 고요하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불상 앞에 앉아 있으면 복잡했던 하루가 차분해진다”고 마음을 털어놓는다. 국보로 지정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보고 있노라면,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시간의 깊이와 명상적 여백이 전해진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날 좋을 때 부모님 모시고 걷고 싶다”, “요즘은 멀리 해외보다 이런 한적한 국내 여행이 훨씬 소중하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가을, 그중에서도 철원은 소리 없이 물들어가는 자연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차분하게 감싸 안는다.
작고 사소한 여행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나를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계절, 철원에서의 고요한 가을 산책이 그 시작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