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 배터리 권고 무시”…국정자원 화재, IT관리 체계 경종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센터에서 발생한 리튬 이온 배터리 화재가 IT 인프라 관리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 시스템의 핵심 동력이 되는 리튬 이온 배터리가 사용기한을 초과했음에도 정기검사 ‘정상’ 판정만을 근거로 교체 권고가 무시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규모 행정 시스템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화재가 IT 인프라 안전관리와 배터리 교체 기준에 대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와 국정자원은 29일, “화재의 원인 배터리는 2014년 LG에너지솔루션이 생산해 LG CNS에 납품한 제품이며, 10년의 사용기한이 지나 지난 6월 교체 권고를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난해와 올해 정기검사에서 모두 이상징후가 발견되지 않아 배터리를 계속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국정자원 이재용 원장은 “권고 메시지는 있었다”면서 “내구연한이 도래하지 않은 다른 배터리와 묶여 1~2년 더 쓸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에너지 저장 효율이 높지만, 일정 사용기간이 지나면 내부 전해질 열화 등으로 안전성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특히 IT 시설의 대용량 배터리는 미세한 결함도 화재로 연결되기 쉬워, 선제적 교체와 엄격한 관리 체계가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제조사가 권장하는 내구연한 초과 시 정상 작동을 보이더라도 교체가 관례다. 이번 사례는 기존 절차 준수의 중요성과 함께, 점검 결과와 무관하게 교체 권고 이행이 왜 필요한지 방증한다.
기존에는 ‘정기검사’에 방점이 찍혔다면, 앞으로는 IT 인프라 적용 배터리의 사용연한 관리 기준 강화 논의가 불가피해 보인다. 실제로 국정자원은 “이제부터 모든 배터리는 이상 여부와 무관하게 권장기간 내 교체를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시스템 손실이 발생한 만큼, 안전불감증에 대한 업계·정부의 근본적 대책이 요구된다.
한편, 사고와 관련해 무자격 업체나 아르바이트생이 투입됐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김민재 행정부 차관은 “무자격 업체가 아니라, 자격을 보유한 전문기술자가 작업 중 사고를 당했다”고 해명했다. 실제 배터리 이동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실투입 인력 역시 8명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공급망 관리와 현장 감시 체계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이번 화재로 정부의 647개 행정 시스템 가동이 일시 중단됐으며, 29일 낮 12시 기준으로 우체국금융, 정부24 등 62개 서비스가 일부 복구됐다. 특히 1등급 국가법령정보센터, 국민신문고, 안전디딤돌, 통합보훈 등 대국민 서비스의 영향이 컸다. 전문가들은 “최첨단 IT 환경일수록, 단일 인프라 장애가 국가 기능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산업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IT 기반 인프라 관리 기준 정비와 선제 교체 체계가 산업 전반의 신뢰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술적 검증 외에 제도적·윤리적 안전장치 부재가 리스크를 키웠다는 점에서, 사후약방문이 아닌 인프라 관리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