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수집 제도 공론화”…정부, K-디스커버리 도입 논의 속도
디스커버리(증거수집) 제도가 국내 혁신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장치로 본격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소송 당사자가 상대방의 핵심 증거를 법적 절차로 확보하도록 하는 미국식 ‘K-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 비대칭으로 피해가 누적된 기술집약적 산업에서, 증거조사 강화가 불공정 관행 해소와 산업 경쟁력 확보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4일 ‘2025년도 제5차 IP 정책 포럼’을 열고,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도입을 중점 안건으로 상정한다. 이번 논의는 22대 국회 발의 특허법 개정안 추진 현황과 그간 산업계 요구, 입법기관 검토 내용을 공유하는 자리로, 패소 원인이 정보력 불균형에 있는 현 특허분쟁 구조에 제도적으로 대응하는 취지다.
국내 특허소송 현장은 현재 피해자가 핵심 자료 입수 없이 소송을 치르는 경우가 많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보력 격차가 불공정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디스커버리(Discovery) 절차를 통해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침해 현장에 출입, 필요시 자료보전명령을 내려 입증 부담을 줄여왔다. 반면 국내는 제도 미비로 분쟁 당사자의 증거확보 권한이 약하며, 손해배상액 산정 등도 한계가 명확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번 개정안에는 법원이 선정한 전문가의 침해현장 증거조사, 소송 당사자 진술녹취, 자료보전 강화 등 주요 내용이 담겼다. LG에너지솔루션과 텐덤 등 민간 기업, 특허전문 변호사, 입법기관 등이 포럼 논의에 참여해 각계 의견을 교환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K-디스커버리 같은 도구가 실제 현장에 적용되면, 정보 취약계층인 중소·벤처기업의 특허권 보호 수준이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한다. 다만 미국 사례처럼 기업 기밀 노출, 소송비용 상승 우려도 병존하는 만큼, 도입 범위와 절차 설계에 대한 치밀한 검토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국내 제도 논의 본격화와 함께, 글로벌 주요국의 특허분쟁 환경도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과 유럽 연합은 데이터 접근권·증거 수집권이 분쟁 해결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며, 산업계-정부 간 소통이 활발하다. 이에 반해 아시아권은 증거조사 제도가 아직 초기 단계여서 선진 모델 도입의 정책적 레퍼런스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책적 관건은 개인정보 보호·기업기밀 보장 등 윤리적 장치를 촘촘히 설계하는 동시에, 혁신기업의 신속한 권리구제가 시장의 기술경쟁력에 어떻게 연결될지에 있다.
이광형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은 “K-디스커버리 도입을 위한 입법 노력이 본격화할 것”이라며 “경쟁적이고 혁신적인 지식재산 환경이 곧 국가산업의 성장축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논의가 법안과 실무 설계로 구체화되는 향후 절차에도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