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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목소리로 시간을 감싸안다”…무경계 연기의 집념→연극 무대 단단히 울린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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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목소리로 시간을 감싸안다”…무경계 연기의 집념→연극 무대 단단히 울린 고백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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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목소리가 새벽을 스치던 낯선 공기 속에, 이상훈은 자신의 목소리로 세월의 결을 섬세하게 빚어냈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여러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았으며, 대통령의 인자함부터 미소년 특유의 떨림, 악마와 괴생명체의 거친 내면까지 각기 다른 존재로 시대와 장르를 가볍게 넘나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청취자와 관객의 가슴에 오래도록 잔상을 남겼다.

 

이상훈은 MBC 표준FM 다큐멘터리 드라마 ‘격동50년’에서 박정희, 김영삼, 노무현 등 실존 인물들의 목소리를 빚어내며 라디오를 듣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소리에 오랜 시간 몰입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될 만큼 ‘진짜’와 가까운 감정선을 주고받았다고 전했다. 인물 탐구와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는 목소리 너머의 인간적 매력까지 이해하게 됐다.

“목소리로 시대를 넘다”…이상훈, 대통령부터 미소년까지→연기 물아일체 고백
“목소리로 시대를 넘다”…이상훈, 대통령부터 미소년까지→연기 물아일체 고백

부산에서 자란 유년기를 뒤로한 채, 꿈을 이루기 위해 상경한 이상훈은 연극 무대에서 연기에 대한 기본기를 쌓았다. 대학로, 홍대, 신촌 등 여러 무대에서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며 ‘배우’ 이상의 정체성을 키웠고, 1999년 성우 공채 데뷔 전까지 수차례 오랜 시험과 도전을 거쳤다. 영화 ‘황산벌’ 속 신라 병사로, 다양한 라디오·TV 프로그램의 전달자로, 애니메이션에서는 수많은 미소년과 판타지 캐릭터로 기억됐다.

 

특히 ‘헌터x헌터’ 샤르나크, ‘프린세스 츄츄’ 아오토아, ‘흑집사’ 언더테이커 등 유명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 연기 변신을 선보였고, “캐릭터마다 새로이 목소리를 빚는 데에는 엄청난 끈기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고백했다. 아이들의 미소를 떠올리며 녹음에 임했던 당시의 설렘도 잊지 않았다. 고가 자동차 등 신뢰가 중요한 광고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선택받으며 상업적 성공을 보탰다.

 

AI 합성음이 급증하는 현시대에도 이상훈은 여전히 인간 성우만이 담을 수 있는 섬세함과 살아 있는 감정의 진동을 지켜가고 있다. 드라마 ‘나쁜 엄마’ 속 무당, 영화 ‘26년’에서의 심미진 부친 등 실존 인물부터 극화된 인물까지, 그는 캐릭터와 완전히 하나 되는 물아일체의 자세로 역할 속에 자신의 온 생명을 쏟았다. 그러한 신념은 “내 존재를 온전히 캐릭터에 녹여야 진짜 연기가 가능하다”는 말로 요약된다.

 

TV 사극 ‘육룡이 나르샤’, ‘바람의 화원’, ‘연개소문’ 등에서도 조연 이상의 독보적 존재감을 뽐냈으며, 영화·연극·코미디쇼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장진 감독과 뜻 깊은 호흡을 이어왔다. tvN ‘SNL 코리아’의 ‘안쳤어’ 캐릭터가 유행하며 사회적 화제까지 이끌었고, 배우 한혜진, 배용준 등 후배를 이끄는 스승의 면모도 두드러졌다.

 

최근 이상훈은 연극 ‘마가렛 화인’으로 대학로 소극장에 다시 섰다. 주연이 아닌 코러스로 참여했지만, 절친한 연출가의 간곡한 요청에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 무대를 채우고 있다. “연극 무대는 단 한 사람만 빛나는 곳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곳”이라는 그의 믿음이, 함께 호흡하는 순간의 감동과 배우로서의 변치 않은 사랑을 부드럽게 드러낸다.

 

수십 년 간, 이상훈은 이름과 얼굴, 심지어 목소리까지 남이 돼 살아왔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자신만이 줄 수 있는 깊은 울림과 무대의 온기를 남겼다. 연극 ‘마가렛 화인’은 3일부터 8일까지 대학로 스카이씨어터에서 공연되며, 자신만의 존재감을 빛내는 이상훈의 새로운 모습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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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격동50년#마가렛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