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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지만 고요하다”…가을 김천, 느리게 걷는 문화 유산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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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지만 고요하다”…가을 김천, 느리게 걷는 문화 유산의 시간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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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선선한 가을 공기가 오는 길목에서, 흐린 날씨에도 일부러 걷는 이들이 많아졌다. 밝은 해보다 자욱한 구름이 드리운 하늘 아래, 김천에서 만나는 고즈넉한 풍경은 바쁜 일상에 쉼표 같은 시간을 선사한다.  

 

김천시는 소백산맥 자락에 터를 잡아 산과 강이 어우러지는 곳. 오늘은 21도 남짓한 기온에 흐린 하늘이 펼쳐져, 시청 앞 연화지에선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잔잔한 저수지의 수면 위로 낮은 구름이 드리워지고, 산책로 옆에 피어 있는 계절꽃과 나무들이 자연과 일상을 조용히 이어준다. “이곳을 걸을 때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연화지를 자주 찾는 주민 이민정 씨는 풍경 속 자신의 생각도 잠시 묻어두곤 한다고 표현했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김천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김천

숲이 더 깊은 증산면의 청암사에는 신라 시대의 역사가 스며 있다. 대웅전과 오래된 석탑, 부도군까지 곳곳에 머문 시간의 흔적이 관광객과 산사의 일상을 잇는다. 오래 전 화재와 중건의 아픔을 지나 오늘까지 이어온 절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여행지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반복되는 생활의 의미가 돼 준다.  

 

“숲길을 걸으며 전각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랜 시간과 고요가 함께 머무는 기분이 듭니다.” 지역 해설사 박경수 씨는 유적지 산책의 본질을 “자연과 역사가 나란히 흐르는 것에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이라 전했다. 그만큼 최근에는 여행지에서 빠르게 움직이기보다, 머무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느슨한 여행’이 주목받는다고도 말했다.  

 

김천 도심과 가까운 자산동벽화마을은 또 다른 매력을 자랑한다. 화려하게 그려진 벽화들은 한때 낡았던 담벼락을 예술의 길로 바꿔 놓았다. “골목마다 주제가 다르고, 예쁜 포토존도 많아요.” SNS에도 #자산동벽화마을 인증샷이 꾸준히 올라오는 배경에는, 이색적인 풍경과 일상 사이 경계 없는 경험이 담겨 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김천에 이런 풍경이 있었는지 몰랐다”, “조용히 혼자 산책하기 좋은 코스 추천해 주세요” 같은 공감 글이 이어진다. 현지 주민들뿐 아니라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김천의 여유로운 모습에 반가운 시선을 보낸다.  

 

이렇게 한가로운 산책과 유산의 만남은, 단순한 관광이 아닌 사유와 재충전의 시간이 된다.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공간, 천천히 걷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는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 삶에 작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지금 이 변화는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조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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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연화지#청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