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SEC 합의 좌초에 암호화폐 대격랑”…뉴욕 연방법원 판결→규제 불확실성 어디로
검은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초여름 햇살이 비추고 있을 때, 암호화폐 시장의 숨죽인 관심이 쏠린 한 장면이 그곳에서 펼쳐졌다. 법정 안팎은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했으며, 법조인들과 업계 관계자들은 길게 늘어진 그림자마저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리플 XRP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분쟁을 둘러싼 최종 합의가 ‘절차상 부적절’이라는 재판부의 단호한 판결 한 마디에 가로막혔을 때, 법정의 적막은 곧 전 세계 시장의 파문으로 번졌다.
판사 아날리사 토레스는 심도 있는 판결문을 통해, 양측이 제출한 합의문이 과징금 감면의 구체적 타당성이나 명령 해제 요건을 충분히 구비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양측은 긴 대립 끝에 민사 집행을 철회하고 항소를 마무리하려 했으나, 다시 법적 방랑길에 들어서게 됐다. 오랫동안 얽혀온 매듭을 풀기를 바라던 글로벌 투자자와 블록체인 업계는 또다시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으로 한 발 내디뎠다.

리플과 SEC 간의 갈등은 미국 내 암호화폐 규제 체계의 정립 한 복판에서 두터운 안개처럼 드리웠다. 단순한 기업 분쟁을 넘어 이 분쟁이 뜻하는 바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전환과도 궤를 나란히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내내 밝혀온 친암호화폐 노선은 SEC 수장 교체와 함께 구체적 방향성을 드러낸다. 바통을 이어받은 폴 앳킨스 위원장은 자율과 규율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좌표를 제시했다. 그는 “암호화폐 시장이 성장하려면 명확한 규칙이 우선이며, 악의적 행위는 단호히 억제하겠다”고 서늘한 어조로 강조했다. 사후 규제의 그림자를 걷어낸 이 발언은 시장에 한 줄기 빛과 또 다른 경계의 신호를 동시에 던진다.
SEC와 리플이 법정 공방을 이어가는 이 시기, 암호화폐 시장 전반은 거친 파도에 휩쓸려 어디로 닻을 내릴지 가늠하기 어렵다. 미 연방정부의 친암호화폐 기조 변화는 샛길을 예고했으나, 사법의 벽 앞에서는 그조차 쉽게 무너진다. 투자자 심리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낯선 새벽을 맞이하고 있으며, 규제 플레이북의 재작성은 불가피해 보인다.
국제사회 역시 이 사건을 주의 깊게 주시하고 있다. 글로벌 암호화폐 규범 논의가 미국 사법부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일시정지와 재개를 반복한다. 각국 정책 당국자들은 미국의 한 걸음, 한 걸음에 발을 맞추려 분주하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에 전이될 암호화폐 정책 혼선의 여진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암호화폐 규제 체계가 다시 흔들리면서, 투자자의 선택과 전략도 다시금 재편될 것이다. 이번 판결은 리플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지만, 나아가 미국 경제와 국제 금융질서 속에서 암호화폐가 어떤 존재로 새겨질 것인지를 떠올리게 한다. 대서양을 건너 퍼지는 규제의 물결이, 그 파문이 어디로 닿을지 전 세계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