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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유산”…국가유산과 미식 어우러진 부안의 가을 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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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유산”…국가유산과 미식 어우러진 부안의 가을 야행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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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린 거리 사이로 은은한 불빛이 스며든다. 요즘 부안에는 밤이 되면 슬그머니 산책을 나서는 사람이 많아졌다. 맑은 밤공기 아래 오래된 국가유산을 하나하나 누비다 보면, 과거와 현재, 전통과 자신의 시간이 겹치는 낯선 감동이 찾아든다.

 

9월 19일부터 20일까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에서 ‘부안국가유산야행’이 열린다. 부안읍 일대 당산과 구 부안금융조합 등 지역을 대표하는 국가유산이 밤의 무대가 돼, 누구라도 잠시 여행자가 될 수 있다. 축제에는 야경, 야로, 야사, 야화, 야설, 야시, 야식, 야숙 등 8개의 테마가 펼쳐진다. 당산제 재현부터 조선 검무, 위도띠뱃놀이, 다양한 인형극과 마당놀이, 국악 공연이 밤거리 곳곳에 스민다. 한편, 분필 놀이터와 캐리커쳐 체험, 먹거리 장터, 플로깅까지 아이와 가족 모두가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작은 축제이기도 하다.

국가유산부터 먹거리 장터까지…‘부안국가유산야행’ 전북 부안에서 열린다
국가유산부터 먹거리 장터까지…‘부안국가유산야행’ 전북 부안에서 열린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여러 지방 도시에서는 유산과 지역 문화의 체험형 야간 축제가 ‘느리지만 깊은 여행’을 선호하는 트렌드와 맞물려 인기를 얻고 있다. 자연스럽게 ‘낮보다 밤에 걷는 산책’, ‘로컬의 숨은 맛집을 야행에서 찾았다’는 후기가 늘었다. 지역 공동체와 청년단체도 축제 기획에 직접 참여하기 시작했다.

 

문화정책연구자 안지현 씨는 “야간 유산 축제의 본질은 도시의 오래된 시간을 걷는 데 있다. 밤의 어스름과 고요 속에서 들리는 공연과 이야기가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맞닿으면서 위로와 새로움 둘 다를 주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SNS에는 “유산야행에서 부안의 밤공기를 맛봤다”, “야시장에서 먹은 부안잡곡주먹밥이 생각보다 별미” 등 체험담이 쏟아진다.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는 가족, 손을 잡고 산책하는 연인, 한적한 골목에서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까지, 어느 순간 이 축제가 모두의 일상이 된다.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의 옛 건물도, 수백 년 전부터 이어진 정월 당산제도, 오늘은 축제의 일부로 우리 곁에 돌아온다. 부안국가유산야행을 찾은 사람들은 “유산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발견하곤 한다.

 

작고 사소한 밤 산책이지만, 그 안엔 세대와 시간을 맥락 삼아 이어지는 부안의 살아 숨 쉬는 오늘이 담겨 있다. 지금 이 변화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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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국가유산야행#부안군#국가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