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바다를 걷는다”…동해 묵호항과 논골담길, 온도 낮춘 가을 산책
여행을 떠난 이들이 흐린 날씨에도 동해를 천천히 걷는다. 바람이 습하게 스며드는 9월, 동해시의 오전 풍경은 26.3°C의 공기와 84%의 습도에 잠겨 있다. 파란 바다는 조금 무거워 보이지만, 그 안에 깃든 추억과 일상은 값지게 반짝인다.
요즘은 맑은 날만 선호하지 않는다. 여행객들은 흐린 날의 동해를 더 깊이 있게 경험한다며 인증샷을 SNS에 올린다. 특히 오랜 항구의 정취와 살아 움직이는 시장이 맞닿은 묵호항, 그리고 예쁜 벽화로 사랑받는 논골담길은 “날씨 덕에 풍경이 더 짙어졌다”는 반응을 이끌고 있다.

묵호항의 주변 풍경은 살아 있는 어시장과 갓 잡은 해산물 요리집이 어우러져 ‘현지의 맛’을 고스란히 전한다. 흐린 하늘 아래 정박한 어선 옆에서 무심코 셔터를 누르는 환한 표정들이 인상적이다. 기자가 직접 걸어보니, 엷게 번진 해안 안개와 항구의 바람 속에서 오래된 이야기가 조용히 들린다.
논골담길은 좁은 골목마다 그려진 벽화와 이야기들이 동해 바다를 배경으로 물든다. 여행객들은 파스텔톤 그림자에 기대어 “예상보다 차분해서 좋았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 아련하다”는 소감을 남긴다. 커뮤니티에도 “숨은 포토존을 찾는 재미가 있다” “혼자여도 산책하기 딱 좋은 거리” 등 공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런 변화는 통계로도 담기진 않지만, 여행 전문가들은 다양한 날씨에 맞춰 여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느린 여행’이라고 부른다. 한 전문가가 “흐린 날의 바다는 감정을 더 차분하게 만든다. 풍경이 아닌, 마음을 걷는 시간”이라 표현했다.
삼화사의 고요도 빼놓을 수 없다. 천년을 품은 사찰, 맑은 계곡물에 깃든 숲소리와 은은한 안개 자락은, 고단한 도시인들의 일상 피로를 조용히 달랜다. “갑자기 짙어진 녹음과 산사의 침묵이 특별했다”, “사진도 좋지만, 그냥 앉아 쉬니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방문객들의 고백도 이어진다.
이런 소박한 여정이 쌓여, 계절 바뀌는 길목에서 여행의 의미 또한 천천히 재정립된다. 맑음도, 흐림도 모두 여행의 일부.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