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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원 목소리 타고 흐른 집 없는 기억”…고려인, 세대의 울음→조국의 빈자리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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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원 목소리 타고 흐른 집 없는 기억”…고려인, 세대의 울음→조국의 빈자리 묻는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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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의 새벽, 아직 한글 간판이 익숙하지 않은 거리에서 배우 이요원이 건네는 따스한 목소리가 라디오 전파를 타고 울려 퍼졌다. MBC라디오 특집 다큐멘터리 ‘고려인, 나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그는 집을 잃고 길 위에 선 고려인들의 삶을 조용히 따라갔다. 익숙한 듯 낯선 질문이 흘러나왔다. 세대가 흘러도 잊히지 않는 이름, 잊지 못할 집의 기억은 어디쯤 남아 있는가.

 

1부 ‘된장과 아리랑’은 러시아 평원에서 강제수송을 견딘 옛 소련 고려인들이 다시 한국 땅을 밟는 여정을 담았다. 역사 위에 새겨진 1937년 9월 9일, 강제이주라는 비극이 시작된 그날부터 먼 유배지에서 한글을 지키고, 된장과 아리랑을 곁에 두며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밥상과 노래, 언어의 풍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모국에 돌아와도 삶은 여전히 타국의 방처럼 불완전하다. 기억이 잠시 머문 식탁 위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중장년 고려인들은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 있다. 그리운 고향이 곧 집이 되지 못하는 현실, 삶의 무게가 소박한 식탁을 더욱 묵직하게 한다.

고려인 강제수송의 기억…‘고려인, 나의 집은 어디인가’ 이요원 내레이션→세대별 정착기 울림 / MBC
고려인 강제수송의 기억…‘고려인, 나의 집은 어디인가’ 이요원 내레이션→세대별 정착기 울림 / MBC

이어지는 2부 ‘나의 이름은’은 자신의 이름에서 뿌리를 찾는 10대 고려인 청소년들의 저릿한 목소리를 전한다. 학교 교실에서 또래에 섞여 있던 아이들은 언어의 장벽과 낯선 규칙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단칸방 창가에서 자신의 미래를 더듬는 청소년들은 그저 잠시 머무는 이방인이길 거부한다. 성장의 끝에서 “나는 누구의 나라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교실, 골목, 집—익숙한 일상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체성을 지키는 모습이 담겼다.

 

특집 다큐멘터리에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실제 모티브가 된 독립운동가 최봉설 지사의 증손주, 최알렉산드르의 사연도 깊게 다뤄진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후손의 현실은 차디찬 골목에 서 있다. 150억을 조국에 쏟아부은 선조의 위대한 이름 아래, 열악한 경제적 조건에서 매일을 버티는 그의 모습은 역사가 남긴 또 다른 질문이다. 조국을 위해 모두를 걸었던 이의 가족에게 한국 사회가 보내는 대우는 어떤가, 특집은 묵직하게 답을 유보하며 거듭 묻는다.

 

무엇보다 배우 이요원의 내레이션은 한 줄 해설을 넘어 이방인으로 남기를 강요받는 고려인 가족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세대를 잇는 정착의 아픔과 희망, 가족의 고백이 이요원의 목소리를 따라 남겨진다. 잃어버린 집을 향한 기억, 언어와 노래가 증언하는 집의 의미가 귓가를 오래 맴돌았다. 역사는 집을 빼앗았지만, 후손들의 기억과 언어, 잊히지 않은 이름들은 집을 회복해 나가겠다는 작은 불씨가 돼간다.

 

‘고려인,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9월 9일과 10일 오전 10시 30분, MBC라디오 표준FM을 통해 광복 80주년의 무게와 더불어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할 소리 없는 숙제를 진하게 녹여낼 예정이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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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이요원#고려인나의집은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