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심전도로 박출률 보존 심부전 예측”…삼성서울병원, 조기 진단 혁신
인공지능(AI) 기반 심전도 분석 기술이 심장질환 조기 예측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박경민·홍다위 교수 연구팀은 심전도(ECG) 검사만으로도 ‘박출률 보존 심부전(HFpEF)’ 고위험군을 예측할 수 있는 AI 모델을 국내 처음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결과는 유럽심장학회 디지털헬스 부문 공식 학술지 ‘유럽심장저널’ 최근호에 게재됐다. 업계는 이번 결과를 “심부전 조기 선별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박출률 보존 심부전은 심장의 수축 기능은 정상이지만, 이완 기능 저하 등으로 발생해 숨참·피로 등 비특이적 증상이 나타난다. 국내외 심부전 환자의 절반 이상이 해당 질환으로 추산된다. 고령, 비만, 고혈압 등 다른 만성질환과 증상이 유사해 기존 임상에서는 진단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특히 확진 과정에 심장초음파, 혈액검사 등 복합적이고 고비용의 정밀검사가 필요해 조기 진단의 문턱이 높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삼성서울병원 연구진은 기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이 병원에서 검사받은 1만 3081명의 심전도, 심초음파, 혈액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유럽심장학회 기준(HFA-PEFF)에 따라 환자군을 구분했다. 이후 딥러닝 CNN 구조인 덴스넷-121(DenseNet-121) 모델을 활용, 비선형·미세 전기신호까지 인식하는 방식으로 AI 예측모델을 설계했다. 데이터셋은 학습·검증·테스트(7:1:2) 구간으로 분할해 환자군 5년(중앙값 4년) 추적 데이터까지 통합 분석했다.
핵심 성과는 AI 모델의 예측 정확도(ROC-AUC)가 전체에서 0.81, 고령·비만 등 위험계층에서도 0.78~0.83 수준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단순 증상 기반 분류, 박출률 수치만으로는 판별이 불가능했던 환자도 심전도 신호만으로 조기 위험 평가가 가능함을 의미한다. 실제 AI가 고위험군으로 예측한 환자는 5년 내 심장사망 위험이 음성군 대비 10배, 심부전 입원 위험은 5배에 달했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 심장초음파 검사나 혈액검사 없이 환자 진단이 필요한 1차 의료 환경에서도 직관적이고 저비용으로 신속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료 현장 실효성이 높다는 평가다. 연구팀은 “AI 기반 심전도 예측이 박출률 보존 심부전 진단의 사각지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AI 진단 시도가 있었으나, HFA-PEFF 공식 점수를 기준으로 모델을 설계·검증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과 유럽은 정밀 의료·AI 기반 위험군 예측 분야에서 경쟁이 치열하지만, 실질 임상에 5년치 데이터를 반영한 대규모 분석 성과는 드물다.
향후 데이터 연결성, 외부 기관 검증, 윤리적 데이터 활용 기준 마련 등 남은 과제도 지적된다. 박경민 교수는 “추가 임상연구와 다기관 협력을 통해 AI 진단의 신뢰성을 높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빠른 시간 내 실의료 현장에 퍼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심장질환 조기 진단과 맞춤형 치료가 대중화될 경우, 의료 시스템 구조 자체의 변화가 따라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