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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발걸음 멈췄다”…이희재, 고독과 영광 뒤편→패션계 안긴 영원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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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발걸음 멈췄다”…이희재, 고독과 영광 뒤편→패션계 안긴 영원한 안녕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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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조명과 낮은 귓속말,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이희재를 향한 미묘한 감정의 결이 흐르고 있었다. 오랜 세월 패션계의 선두에 섰던 이희재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는 이들은 묵묵히 고개를 떨구며 그를 추억했다. 담도암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고통의 시간, 그리고 말없이 삶을 지탱해온 강인함이 모두의 심장을 서늘하게 했다.

 

이희재는 지난 9일 저녁, 73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지난 2022년 1월 대수술로 고비를 넘긴 뒤에도 암이 재발해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했다. 평생을 홀로 살아온 그의 마지막 빈소는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지며 잠시도 적막하지 않았다. 12일 오전 발인이 예정돼, 패션계와 예술계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조용한 슬픔으로 그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전설의 발걸음 멈췄다”…이희재, 패션계 뜨거운 사연→영원한 작별
“전설의 발걸음 멈췄다”…이희재, 패션계 뜨거운 사연→영원한 작별

패션계를 빛낸 1세대 모델, 이희재의 삶은 늘 무대와 조명을 들었다. 1971년 ‘목화아가씨’ 1위 수상으로 데뷔한 후, 루비나와 김동수 등 동료들과 함께 한국 패션의 아이콘이 됐다. 1979년에는 미국 무대에서 3위를 차지하며 세계에 존재감을 알렸고, 늘 당당한 태도와 뚜렷한 소신을 지녔기에 특유의 우아함과 카리스마가 남달랐다. 시선을 사로잡는 자기만의 몸짓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유행을 이끌었다.

 

화려한 워킹에 머물지 않고 이희재는 두터운 자취를 남겼다. 1993년 출간한 ‘아름다운 여자 : 이희재 차밍스쿨’은 ‘이희재 다이어트 신드롬’ 신조어까지 만들며 사회적 열풍을 일으켰다. 저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뒤 그녀는 2010년 예술가로 변신, ‘루이와 레이’ 첫 전시를 열어 그림에도 열정을 불태웠다. 모델이자 저자, 화가로 이어진 변화는 한국 대중문화에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겼다.

 

묵직한 존재감과 꺾이지 않는 신념, 따뜻한 조언과 남다른 시선. 긴 세월을 지나 이희재가 남긴 이름은 모두의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킨다. 패션계에 혁신을 불러온 인물, 그 고유한 흔적은 이제 빛바랜 사진과 기억 너머에 자리한다. 영원으로 나아간 그의 마지막 길에는 삶의 무게와 슬픔, 그리고 따스한 존경의 감정이 함께했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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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패션모델#다이어트신드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