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 시가총액 184조 증발”…미국 수출규제 여파, 반도체 질서 재편 신호→투자 전망 변수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의 새벽은 유난히 고요했다. 첨단 반도체 산업의 심장을 이끄는 ASML 본사는 운반 차량의 미세한 진동마저 통제할 만큼 엄격한 질서와 정밀함이 흐른다. 그러나 수많은 투자자와 산업 전문가들의 시선은 이제 이 유리벽 저편에서 일렁이고 있다. 1년 새 180조 원이 넘는 시가총액이 사라진 그 거대한 파장, 미국의 수출통제 강화와 불확실한 국제 무역 질서, 그리고 인공지능 시장의 성장세 둔화라는 세 가지 그림자가 이곳의 아침 공기를 묵직하게 붙들었다.
ASML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7월 4,295억 달러, 한때 유럽 증시의 가장 높은 봉우리였다. 연중 최고치였던 1,002.2유로의 주가는 AI 열풍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시장의 열기는 느긋하게 수그러들었다. 미국 행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가 예고 없이 강화되는가 하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기의 관세정책 재현에 관한 불확실성까지 요동치며, ASML의 주가는 단숨에 550유로까지 곤두박질쳤다. 높았던 곳에서의 추락, 45%의 급격한 낙폭이 글로벌 반도체 질서의 불안한 동요를 상징했다.

다만 ASML은 관세 불확실성이 완화된 후 서서히 진정세를 보였다. 1분기 주문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음에도, 그 주가는 전날 666.1유로, 28일에는 660.8유로로 수면 위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투자은행 오도BHF의 스테파네 후리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대중국 제재 우려가 모든 반도체 장비주를 무겁게 짓눌렀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무역이 다시 합의점을 찾는다면, 불확실성 해소와 함께 업계의 반등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고 풀이한다.
그럼에도 주요 글로벌 투자기관은 ASML의 내재적 성장 가능성이 쉽게 흐려지지 않을 것으로 바라본다. 시장조사업체 LSEG에 따르면, 애널리스트들이 집계한 1년 목표주가 평균은 779유로로 현재가 대비 17%의 상승 여력을 남겼다. 특히 웰스파고 등 해외 투자은행들은 삼성전자, 인텔 등 첨단 반도체 업체들의 차세대 생산 설비 투자가 ASML의 2025~2026년 성장동력을 뒷받침할 것이라 분석한다.
글로벌 반도체의 심장부에서 불안정한 무역정책과 AI 산업의 곡선이 교차하는 지금, ASML의 주가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서 새로운 산업구도의 징후를 이야기한다. 미중 무역갈등의 파고, 주요 기업의 투자 전략, 그리고 차세대 기술 방향성이 복잡하게 얽히는 지점에서, 시장은 잠시 숨을 고른다. 국제사회는 ASML을 둘러싼 ‘불확실성의 밤’을 지나, 다시 한 번 산업 변화의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