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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소고기 시장 ‘레드라인’ 설정”…정부, 한미 통상협상서 연료용 농산물 카드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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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소고기 시장 ‘레드라인’ 설정”…정부, 한미 통상협상서 연료용 농산물 카드 검토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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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소고기 시장 개방을 두고 정부와 미국의 통상 전략이 맞붙었다. 핵심 농산물의 시장 확대를 요구해 온 미국의 입장이 주목되는 가운데, 25일 예정된 한미 통상협의에서 정부가 ‘레드라인’을 분명히 하며 연료용 농산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민심 반발과 농가 보호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된 데다, 여론과 정책의 방향은 어느새 한국 통상정책의 고착 구조로 자리잡았다.

 

23일 정부는 대외경제장관회의를 통해 한미 협상에서 쌀과 소고기 등 민감도가 높은 농산물은 통상 카드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농식품부 등 각 부처에 따르면 미국은 미국산 쌀 수입 확대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허용을 주요 요구안으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농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며 두 품목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쌀의 경우 현재 한국의 미국산 수입 물량은 13만2천304톤으로 전체 저율관세할당물량의 32%를 차지한다. 추가 물량 확대에는 세계무역기구(WTO) 동의나 국회 비준이 필수적이며, 미국 수입 확대가 단일국 특혜 시비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고 당국은 설명했다. 소고기 역시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라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는 여전히 수입 금지다. 정부 당국자는 “해외 다른 수출국과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바이오에탄올 등 연료용 옥수수와 같은 ‘연료용 농산물’ 수입 확대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해당 품목은 식량안보와 직접적 관련성이 적고, 국내 옥수수 자급률이 0.7%로 미미해 농가 반발 우려도 적다. 지난해 전체 옥수수 수입량 1천130만톤 중 미국산은 22% 내외였으며, 주로 사료 또는 식용 전용으로 쓰이는 현실적 한계에서 안정적 공급망 확보가 과제로 지적됐다.

 

정부는 식용 농산물 시장 개방 요구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지만, 연료용 농산물 분야에선 수입 확대 가능성을 일부 시사했다. 특히 국내에서 바이오에탄올 대부분을 완제품으로 수입하는 만큼, 향후 원료용 옥수수 도입이 본격화될 경우 연관 산업구조 변화도 전망됐다.

 

한편, 미국 측이 요구해 온 사과·유전자변형작물(LMO)은 이미 과학적 절차와 평가 과정을 전제로 개방된 품목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산 사과는 약 30년 전부터 수입 협의가 시작돼 위험 분석 2단계 진행 중이며, LMO 감자는 식약처의 안전성 검사만 남은 상황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농산물 시장 개방은 극심한 민감 사안”이라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쌀·소고기 시장 개방이 타국과의 통상 분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레드라인’ 전략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반면 연료용 농산물 확대는 대미 통상 협상에서 일정 부분 조정 여지를 남기는 선택지로 분석된다.

 

당분간 한미 통상협의는 쌀·소고기 등 민감 품목을 배제하는 가운데, 연료용 농산물 수입과 기타 협상의 맞교환 가능성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향후 협상 상황에 따라 시장 영향 분석을 지속하고, 필요시 추가적인 통상 전략 보완에 나설 계획이다.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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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한미통상#연료용농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