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지도 국외 반출 유보”…정부, 애플·구글 요구에 신중 기조 강화
고정밀 디지털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둘러싼 국내외 IT 기업과 정부 간 대립이 가열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난 4일, 애플이 요청한 1대 5000 축척 상용 디지털지도의 국외 반출 결정을 유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기존 구글의 지도 반출 요청에 대한 처리 시한을 연장한 바 있으며, 이번에도 애플 신청 처리기간을 60일 추가 연장하면서 신중한 검토 기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지도 데이터 흐름을 둘러싼 주권·보안 경쟁의 분기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협의체의 논의 대상은 애플이 지난 6월 정부에 요청한 1대 5000 디지털지도다. 이는 실시간 내비게이션, 자율주행, 증강현실 서비스 등 첨단 IT 기술 적용의 근간이 되는 고정밀 데이터로, 현재는 국가 차원에서 반출과 활용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 국외반출협의체는 이번 유보 결정에서 “구글과 동일하게 국가안보와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층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혀, 기술적 활용도와 함께 안보 리스크도 쟁점임을 강조했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GPS 기반 위치정보의 핵심 자원으로, 기존 상용지도보다 길·시설·지형 경계선 정보가 2배 이상 상세하게 표현된다. 글로벌 IT 기업들은 자사 스마트폰 지도 서비스 완성도 및 자율주행 등 차세대 모빌리티 서비스 구현을 위해 이 데이터를 해외 데이터센터에서 연계·처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애플과 구글 모두 지도 반출 허용을 통해 국내 사용자 경험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부와 안보 당국은 민감한 지리정보가 해외 서버로 이전될 경우 국가 기반시설 노출, 데이터 주권 약화 등 위험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서는 지도 데이터의 1대 5000 축척까지는 산업적 활용 효용이 크다고 판단되지만, 해외에서는 이 정보가 정부 인프라·군사시설 파악 위험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이 쟁점이다.
실제로 구글은 지난 2월, 이전과 동일하게 1대 5000 수치지형도 반출을 신청했으나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 등 정부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하지 않아 불허 결정을 받은 전례가 있다. 미·영·일 등 주요 국가들도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시 각종 보안심사와 관련 법규 적용을 강화하고 있어, 한국 역시 글로벌 표준과 유사한 통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시장에서는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 시 국내 SW·플랫폼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와, 반대로 글로벌 빅테크 서비스 품질 저하에 따른 이용자 불만이 생길 수 있다는 상반된 목소리가 공존한다. 전문가들은 “첨단 산업 활성화와 데이터 주권 보호 간 균형이 정책의 최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봤다.
결국 국내 지도 데이터 반출을 둘러싼 정부와 글로벌 IT 기업 간 힘겨루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산업계는 정부의 이번 신중 기조가 시장 진입장벽으로 작용할지, 또는 자국 산업 보호 효과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