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호 일병, 두 딸에 남긴 마지막 약속”…국방부, 전사 72년 만의 유해 확인→가족 품으로 귀환
한 남자가 젊은 시절, 어린 두 딸을 뒤로한 채 조국의 운명을 등에 지고 전장에 섰다. 1953년, 바람결처럼 스쳐 지나간 전쟁의 끝자락에서 조영호 일병이 남긴 유일한 소원은 가족의 안녕과 평화로운 내일이었다. 그리고 그 한마디 약속이 장장 72년의 세월 끝에 빛을 보았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가 국군 제11사단 소속 고 조영호 일병임을 공식 확인했다. 1929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나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그는 6·25전쟁 막바지, 제주도 제1훈련소로 입대해 가족과 짧은 이별을 마주했다. 그때 그의 품에는 여섯 살과 세 살의 어린 딸만이 남아 있었다.

이후 치열한 고지전이 펼쳐진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서 조영호 일병은 1953년 7월 18일 전사했다. 정전협정 체결을 얼마 남기지 않은 뜨거운 격전 속에서 그의 이름도, 삶도 잠시 먼지 속에 묻힌 듯했다. 그러나 그가 몸담았던 전선에서는 국군 제7·11사단이 중공군의 거센 공세를 버텨내며 전선을 지켰고, 조 영웅이 남긴 자취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굳건하게 남아 있다.
유해의 귀환은 남은 가족들에게 아물지 않던 상처에 묵직한 온기를 전한다. 유가족 요청에 따라 서울 영등포구 고인의 여동생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가 조용히 열렸다. 멀리 호주에서 거주 중인 딸 조한춘 씨는 아버지께 인사를 전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조 씨는 “생전에 아버지를 뵐 수 있을 거라 생각 못 했지만, 이렇게라도 아버지를 만나 정말 기쁘다”며 복잡한 감정을 고백했다. 행사 자리에서는 신원확인 통지서와 오래전 전장의 기억을 담은 유품이 가족의 손에 전해졌다.
국방부는 2000년 4월 유해 발굴사업을 시작한 후 현재까지 가족의 품에 돌아간 국군 전사자는 이번에 확인된 조영호 일병을 포함해 256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국방부는 남겨진 영웅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