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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도 한여름, 바람 따라 동굴로 간다”…정선에서 만나는 시원한 여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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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도 한여름, 바람 따라 동굴로 간다”…정선에서 만나는 시원한 여름의 한 장면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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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한낮,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숨이 턱 막히는 폭염 속에서도, 여행지에선 같은 날씨가 전혀 다른 경험으로 남는다. 정선의 산과 강이 빚어낸 풍경 속에서, 여름은 더 특별해진다.  

 

정선 화암면의 화암동굴은 오랜 세월 땅속에 감춰져 있던 신비의 공간이다. 한때 금을 캐던 광산이었지만, 지금은 석회암 동굴로서 관광객들에게 서늘한 ‘숨통’을 틔워준다. 내부로 들어가면, 한여름에도 10도 초반의 차가운 기운이 발끝까지 내려앉는다. 동굴 벽을 따라 춤추듯 매달린 종유석, 그리고 고요한 어둠 속의 석순과 석주가 선물하는 장관은 밖의 뜨거움을 금세 잊게 만든다.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병방치스카이워크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병방치스카이워크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정선의 낮 최고 기온은 33도를 넘는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릴 때, 동굴 입구에만 서 있어도 시원한 바람에 마음까지 식혀진다.  

 

병방치스카이워크는 또 다른 반전의 체험이다. 투명한 유리 바닥 위에 올라서면 발밑으로 펼쳐진 조양강과 병방산, 그 곡선들이 한반도 지형을 닮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아찔하지만 눈을 뗄 수 없다”고 방문객들은 표현했다. 유리 바닥을 걷는 짜릿함과 동시에, 주변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에서 느긋하게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쉼표를 찍을 수도 있다.  

 

정선레일바이크는 시골 역에서 역으로, 철길 위를 달리며 산과 들, 계곡을 통과한다. SNS엔 “바람에 온몸이 호강하는 기분”이라며 가족, 친구와의 추억을 인증하는 사진이 끊이지 않는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이어지는 길 위에서, 누구나 자연과 하나가 되는 해방감을 누린다.  

 

예전엔 피서는 그저 에어컨 바람 아래 쉬는 일이었지만, 요즘은 더 적극적으로 자연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정선아라리촌에선 옛 건축이 주는 그늘과 정서가 특별하다. 대마 껍질로 이은 저릅집, 소나무 널판으로 만든 너와집, 그리고 굴피집과 돌집들이 조양강변을 따라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전통 민가 구석구석, 농기구 공방과 물레방아, 서낭당의 정취에 빠져드는 이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자연 속으로 피신하는 경험 자체가 진짜 여름의 휴식”이라 부른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낯선 풍경에 눈이 시원해질 때, 쌓였던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고 느끼는 이들도 많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엔 “무더위도 괜찮다, 그래서 오히려 정선이 더 좋다”는 공감이 퍼지고 있다.  

 

크게 특별할 건 없지만, 더위 속을 피하며 만나는 낯선 풍경은 나를 한 번 더 환기시킨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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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화암동굴#병방치스카이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