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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펀의 붉은 등불, 스린 야시장의 열기”…떠오르는 대만의 밤, 낭만과 미식의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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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펀의 붉은 등불, 스린 야시장의 열기”…떠오르는 대만의 밤, 낭만과 미식의 여운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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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만 타이베이를 찾는 여행객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에는 짧은 경유지로만 여겨지던 곳이지만, 지금은 골목의 등불과 야시장 테이블에서 하루를 천천히 보내는 이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사소한 일정 변화지만, 그 안에는 달라진 여행의 취향과 태도가 담긴다.

 

실제로 타이베이 여정은 오전부터 시작된다. 기온이 34도에 이르고, 체감은 42도까지 오르니 낮에는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자연스럽다. 타이베이101 전망대에선 먼 산과 바다가, 아래 쇼핑몰과 레스토랑에선 시원한 공기가 기다린다. 국립 고궁 박물관이 자랑하는 도자기와 서화, 오래된 청동기 앞에 서면 시간이 잠시 멈추기도 한다. 더위와 습도를 피해 박물관이나 전망대에서 느긋하게 시티 라이프를 즐기는 여행자들이 많아진 흐름이다.

사진 출처 = pixabay
사진 출처 = pixabay

오후가 되고 소나기 예보가 등장하면 여행의 박자가 달라진다. 룽산사에선 향 냄새와 화려한 색이 감각을 자극하고, 인근 재래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일상과 전통이 한데 섞인 풍경이 지나간다. 조금 더 여유롭게 시먼딩 거리를 걷다 보면, 길거리 공연과 옷가게, 음식 냄새에 둘러싸인 채로 도시의 ‘젊음’을 실감하게 된다. 어떤 여행자는 “시먼딩의 북적임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저녁이 가까워지면 여행의 진짜 매력이 시작된다. 지우펀은 언덕을 따라 붉은 등이 켜지고,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 안에 찻집과 오래된 가게가 늘어서 영화 속 장면 같은 풍경을 만든다. 해가 질 무렵, 바다와 마을이 어우러진 전경 앞에 머무르는 여행객들은 “지우펀의 낭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고백했다.

 

조금 더 늦은 밤, 스린 야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아침과 전혀 다른 또 하나의 타이베이가 열린다. 거리 곳곳에서 버블티와 대왕 오징어 튀김, 후추빵을 손에 쥔 사람들, 게임 부스와 쇼핑 노점에서 웃고 떠드는 무리가 모여든다. “야시장은 그 나라의 리듬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는 이도 있었다. 외국인뿐 아니라 현지인까지 땀을 식히며 야식과 일상을 즐기는 모습이 익숙하다.

 

이런 여행의 변화는 숫자와 경험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동남아시아 여행에 대한 선호 조사에서 대만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타이베이와 야시장 관련 키워드 검색량이 늘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타이베이 여행은 더 이상 유명 관광지만 찍고 떠나는 유람이 아니라, 현지의 시간과 감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머무름의 여행’으로 변화하는 중”이라고 느꼈다.

 

SNS에서도 “지우펀 등불 아래서 먹는 샤오츠(간식) 한 입이 평생 남을 기억”이라는 후기, “스린 야시장 투어는 매일 가도 질리지 않는다”는 댓글이 눈에 띈다. 더운 낮에는 실내 명소에서, 해질 무렵엔 천천히 걷고 오래 머물 수 있는 밤의 동네가 요즘 타이베이 여행자들의 선택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선택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느린 시간’을 찾으려는 작은 시도일지 모른다. 작고 소박한 골목, 한 모금의 차, 야시장 불빛 아래의 웃음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위로를 얻는다. 타이베이의 밤은 단순한 여행 코스가 아니라, 삶의 리듬을 바꾸는 새로운 기호로 자리 잡고 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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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지우펀#스린야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