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있어도 약값 장벽”…국내선 혈액암 환자 치료 기회 놓친다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등 치명적 혈액암 치료 환경에서 국내 건강보험 신약 급여 지연이 환자 생존에 장애물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는 필수 항암 신약을 허가 후 한 달여 만에 보험에 등재한 반면, 국내 환자들은 높은 약값 부담에 치료를 포기하는 실정이다. 업계는 이번 신약 급여 현황이 '치명 질환 치료 접근성' 경쟁의 중대한 분기점이라고 보고 있다.
23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호주는 혈액암 면역항암제인 블리나투모맙(블린사이토)의 공고요법에 대해 허가 후 단 35일 만에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완료했다. 호주 평균 의약품 급여 소요기간(647일) 대비 18배 빠른 이례적 결정이다. 상대적으로 질환 진행 속도가 빠른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로, 신속 등재는 생존률 제고와 직결된다. 이 질환은 전체 암의 0.4% 미만으로 드물지만, 재발 위험 및 사망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치료의 조기 접근이 필수적이다.

국내에서는 같은 약이 지난 2월 적응증 확대 승인됐으나, 현재까지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는 전액을 자비로 부담한다. 대한혈액학회와 한국혈액암협회 설문조사 결과, 환자 10명 중 6명 이상이 고가 신약의 비급여 탓에 실제 치료를 망설이거나 결정을 미뤘고, 대다수는 해외 대비 국내 신약 접근에서 소외감을 호소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의에 오른 혈액암 치료제 중 최초 급여 심의에서 등재된 비율이 15%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번 사례는 기존 신약 접근 정책의 한계를 드러냈다. 국내에서 신약 허가 이후에도 급여 결정까지 수년이 소요될 수 있어 환자가 비용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치료를 포기하거나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혈액암 환자들은 ‘약값 장벽’에 가로막혀 생존과 직결된 치료 방법을 택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전문가들은 임상적 유효성이 명확한 신약이 재발, 진행속도가 빠른 중증 희귀질환에 적용될 경우, 보험 급여 결정 속도가 곧 환자 생존 가능성을 좌우한다고 본다. 대한혈액학회 성인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연구회 이원식 위원장(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은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의 경우 절반이 재발하고, 재발 환자 완치율이 10% 미만으로 뚝 떨어진다”며 “최초 완전관해 이후 재발을 막을 신속한 치료 옵션이 바로 생존율에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최근 보험등재 기간 단축 등 신약 접근성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보건복지부는 급여 등재 심사체계의 전문성을 높이고, 단계별 소요기간을 단축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다만, 환자 수가 적은 희귀질환 약제의 경우 여전히 보험 등재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의료계 비판은 남아 있다.
업계와 학계는 “신약 효과가 명확하고 급성기에 투여 기회가 한정된 경우, 해외 신속급여 사례에서 정책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산업계는 이번 신약 급여 프로세스가 실제 시장과 환자 진료 현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