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하늘, 깊어지는 자연”…평창에서 만나는 힐링의 순간들
흐린 하늘 아래 평창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예전엔 맑은 날 여행이 최상이란 인식이 강했지만, 이제는 날씨마저 일상의 흐름처럼 받아들인다. 습도 높고 흐린 9월의 아침, 평창에서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오히려 더 여유롭고 차분한 자연을 마주하게 한다.
요즘 평창의 대표 관광지인 대관령양떼목장에서는 탁 트인 초원 위로 흐르는 안개와 양떼의 움직임을 사진에 담는 이들이 많아졌다. SNS에는 흐린 하늘과 풀 사이를 거니는 발자국 인증, 자연광 속 허브나라농원 산책 기록이 이어진다. 허브나라농원의 테마정원과 계곡 물소리, 꽃의 향기 속에서 “날씨가 흐려도 내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진다”는 감상도 쉽게 만난다.

이런 변화는 여행 트렌드에서도 나타난다. 과거에는 맑은 날에만 관광이나 산책이 선호됐으나, 최근엔 흐린 날씨와 습도를 즐기는 ‘슬로 트래블’이 주목받는다. 한국관광공사는 평창 일대의 숲길이나 고산지대를 중심으로 한 방문객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한다. 바쁜 도시에서 벗어난 자연 속에서 잠시 쉬어가려는 이들의 선택이다.
심리전문가 박성은 씨는 “흐린 날씨와 조용한 산사, 숲길은 감각을 낮추고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탁 트인 공간보다 안개와 습도가 주는 안전한 포근함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가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걸어보니, 연두빛 낀 공기와 부드러운 흙길, 그리고 오대산에 스며든 정적이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여행 커뮤니티에도 “비가 와도 좋고, 흐려서 더 차분하다”, “조급하지 않고 느리게 걷는 게 오히려 더 큰 위로가 됐다”는 공감 댓글이 줄을 잇는다.
평창의 흐린 하늘과 초록은 단지 계절적 풍경이 아니라, 바쁘고 지친 현대인들이 짧게나마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되고 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