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감옥 하도권, 참혹 재현”…불길한 벽 속 피어오른 외침의 기록→진정한 광복의 의미에 질문 던지다
찬 바람이 감도는 감옥의 벽 사이, 하도권이 연기하는 백범 김구의 상처 입은 눈빛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옥중의 삭막함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인간의 존엄과 자유에 대한 갈망, 그리고 무너질 듯 매 순간마다 터져 나오는 불굴의 외침이 뮤지컬과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서사 위에 흐른다. MBC 광복 80주년 특집 뮤지컬 다큐멘터리 ‘모범감옥’은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에 얽힌 독립운동가들의 숨 막힌 기록을 세밀하고도 강렬하게 재현해내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물음을 남겼다.
첫 막을 연 ‘옥중일기’는 모두가 포개져 버텨야 했던 좁디좁은 감방과, 절대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하루하루를 보여줬다. 아교, 솜, 짚 한 가닥까지 허기에 메마른 시절, 하도권이 빚어낸 백범 김구의 인내와 응어리진 눈물이 감옥을 울렸다. 수많은 동지들이 구겨진 채로 선 서늘한 공간에서 뒷배 없는 절망감이 엄습했지만, 서로의 체온조차 의지가 되는 벗들에게서 꺼지지 않는 희망과 온기가 번져갔다.

이어지는 ‘형무소의 짐승들’에서는 인간을 기계로 만들려 했던 일제의 획일적 규정 속 수감자들의 상처와 치욕이 군무와 노래, 시인 김광섭의 증언을 따라 사실적으로 펼쳐졌다. 복도를 가르며 벗은 몸으로 나무 막대기를 뛰어넘는 치욕스러운 검신의 순간, 작은 몸짓마다 되새겨지는 모멸감과 굴욕감의 실상이 배우들의 몸짓과 음성에 응축됐다.
가장 처절한 순간은 뮤지컬 ‘복종하라’에서 맞이한다. 사지 결박, 손톱 밑에 가해진 고통, 뜨거운 물고문 등, 기록과 회고록을 따른 고문의 실상은 차마 눈을 마주하기 힘든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폭력에도 사라지지 않은 희망의 불씨는, 끝내 자유를 포기하지 않은 영혼들의 결연한 의지로 살아있었다.
서대문형무소에 첫발을 내디뎠던 순간, 오프닝 곡 ‘그곳에 조선인이 있었다’가 울려 퍼지며 차디찬 벽과 생의 끝자락에 선 이들의 두려움, 각오, 좌절이 무대 전체를 아우르고 지나갔다. 강우규 의사와 유관순 열사의 옥중 마지막 20분을 기록한 ‘깃발이 되리라’ 장면에서는 사형장으로 떠나며 남긴 시와 만세의 절규, 그리고 간수들에게 가로막힌 외침이 마지막까지 응축돼 관객의 심장을 두드렸다.
하도권은 백범 김구로, 서범석은 강우규 의사로, 고훈정과 신창주, 송영미는 안창호, 한용운, 유관순 등으로 변신해 철저하게 실존 인물들의 삶을 빚어냈다. 이들이 혼신을 다해 표현한 고단한 하루와 잃지 않은 용기는, 이름 없이 스러진 수많은 이들의 기억을 현재에 불러왔다.
‘모범감옥’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차가운 감방에서도 실낱같던 존엄성과 자유의 염원이 어떻게 꺼지지 않았는지에 더 큰 방점을 찍는다. 일제의 폭력에 삶이 무너졌으나, 자유와 인간다움은 끝끝내 지켜졌으며, 이 울림 가득한 서사의 끝에서 진정한 광복의 의미가 우리 시대에도 또 한 번 묻힌다.
MBC 광복 80주년 특집 뮤지컬 다큐멘터리 ‘모범감옥’ 1부는 8월 16일 토요일 밤 8시 40분, 역사의 숨결과 예술의 감동이 어우러진 장면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