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23시간의 절규”…故 김은진, 구조 외면당한 기록→침묵의 사회를 묻다
눈부신 신도시의 낮은 뜨거웠지만, 故 김은진의 23시간짜리 목소리는 어둡고 고요한 사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누구도 귀 기울이지 못했던 침묵의 기록을 꺼내며, 한 사람의 이름을 비극 끝에 다시 불러냈다. 살아 생전에 김은진은 대담하게도 80번을 경찰에 신고했고, 스스로를 지키려 1년 넘게 침착하게 녹음을 남겼다. 하지만 시스템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사라졌고, 결국 참혹한 결말만이 남았다.
2025년 5월 12일, 동탄 신도시에는 날카로운 비명이 가득했다. 이 비극은 단순히 우발적 폭력이 아니었다. 손이 케이블 타이로 꾀매지고, 머리는 검은 천에 덮인 채, 수차례 칼에 찔린 피해자는 그날, 오랜 시간 집요하게 쫓기고 고문당했다. 범인 이 씨는 분리조치 이후에도 끈질기게 김은진을 감시하며 자신의 왜곡된 구원자 콤플렉스를 유서에 남겼다. 수사진들은 12장에 달하는 범인의 유서에서 또렷하게 드러난 통제와 소유욕, 그리고 스토킹 범죄의 구조적 연관성을 포착했다.

경찰의 대응은 번번이 실패로 이어졌다. 첫 신고에서 “화해했다”는 말에 종결을 택했고, 두 번째 신고 역시 “말다툼”이라는 진술로 진실을 묻었다. 세 번째에는 600쪽이 넘는 고소장과 80여 장의 증거가 있었음에도 구속영장은 담당자의 휴직으로, 보고는 관리자의 무관심으로 사라졌다. 현장 경찰과 지휘부 모두 이미 체계적 위험 시그널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외면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김은진이 남긴 23시간 분량의 녹음 파일에서 실체적 진실을 찾아냈다. 녹음에는 범인이 경제적 통제와 감시, 수시로 반복되는 위협과 폭언, 이른바 ‘가스라이팅’이 일상이 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취재진은 김은진이 왜 매 순간을 기록했는지, 고립 속에 도움을 절박하게 외쳤는지 그녀의 내면을 조명했다. 이 과정에서 지인들은 피해자가 주변에 계속 두려움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그 사회적 신호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법 제도와 현장 수사, 피해자 보호체계의 구멍은 비극을 방조했다. 반복된 고소, 고통의 목소리, 방대한 증거 자료 앞에서도 시스템은 움직이지 않았다. 담당자 한 명의 부재, 보고 누락, 매뉴얼 미비와 무관심이 뒤엉켜, 사회의 안전망은 한 번의 도움도 주지 못한 채 무너졌다. 피해자는 구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풍경처럼 반복되던 ‘개인적 문제’라는 시선과 ‘왜 헤어지지 않았냐’는 2차 가해는 피해자를 점점 더 고립시켰다.
경찰 수뇌부의 공식 사과가 이어졌지만, 이미 한 생명은 스러진 후였다. 경기남부경찰청과 화성동탄경찰서가 뒤늦게 책임을 인정하며 감찰을 약속했으나, 사건은 이미 사회 시스템의 총체적 실패로 남았다. 데이트 폭력 대응 제도의 부실, 업무 연속성 보장의 부재, 피해자 보호조치의 미비함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모두의 참사로 확장됐다.
이날 오후 8시 55분,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단순한 재구성을 넘어 “우리는 왜 김은진 씨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23시간 분량의 치열한 기록, 80여 차례의 절규, 수없이 쏟아졌던 구원의 신호가 오늘 사회 전체에 던지는 거울일 수 있기에, 이번 방송은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