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한 상황, 사법부 목소리 모아야”…대법원, 민주당 사법개혁법안에 의견 수렴 착수
사법개혁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이 다시 격화되는 가운데,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 5대 의제’에 관한 공식 입장을 밝히고 전국 법원장들의 의견 수렴에 나섰다. 대법원은 최근 이례적으로 법원 내부망을 통해 논의 상황을 공유하며, 사법부의 공식 의견을 집대성하는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9월 1일 오후 전국 각급 법원장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이례적인 절차진행으로 비상한 상황”이라며 “조만간 법원장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검토하고 있다. 각급 법원은 판사들의 의견을 널리 수렴해달라”고 요청했다. 민주당 ‘국민중심 사법개혁 특별위원회’가 ▲ 대법관 증원 ▲ 대법관 추천방식 개선 ▲ 법관 평가 제도 개선 ▲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의 법안을 신속히 추진하자, 사법부가 내부 구조 개편에 대한 입장 표명과 함께 공식 대응에 나선 것이다.

각 사안별로 대법원의 입장 또한 명확히 제시됐다. 천 처장은 대법관 증원과 관련해 “대법관 수를 과다하게 늘리는 것은 대규모 사법자원의 대법원 집중 투입으로 사실심이 약화될 수 있고, 예산·시설 문제도 있다”고 밝혔다. 상고제도 개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국민의 권리·의무, 재판 청구권에 영향이 매우 큰 만큼 신중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민주당이 제기한 대법관 추천위원회 개편에 대해선 “현재 추천위도 대법원장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할 수 없으나, 이미 대법원장 후보자 제시권은 폐지돼 있다”며 민주당 주장에 사실상 반박했다. 대법관 다양성 확보가 어려운 구조적 원인에 대해서도 우리 상고심 구조와 국민천거, 청문회 제도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있다고 해석했다.
또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관평가제도 등 인사시스템 변화에는 “외부 평가와 인사개입이 법관의 인적 독립, 재판의 독립을 흔들 우려”라며 “법관사회에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시민사회와 학계가 요구해온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에 대해서는 “국민의 사법정보 접근성을 위해 공개 확대에 적극 찬성하지만, 미확정 형사판결의 경우 무죄추정 원칙 등 보완책 필요성도 언급했다”고 밝혔다.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사법행정자문회의 등의 논의와 형사소송규칙 개정 과정을 고려해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주도하는 신속 입법 추진이 사법부 공식 참여와 의견 수렴 과정을 건너뛰고 있다는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천 처장 역시 “종래처럼 범국가적 사법개혁 논의절차 없이, 비정상적 절차로 입법 추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제동을 걸었다.
한편, 과거 사법개혁 논의는 여러 주체의 참여와 합의 절차를 거쳐 국민참여재판 도입, 법학전문대학원 출범 등 다양한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사법부의 공식 참여 없이 신속하게 처리되는 점이 현장 판사들 사이에서 우려 목소리를 부르고 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조만간 전국 법원장 회의를 소집해 판사 개별 의견을 모으고, 이러한 내부 여론을 반영한 사법부 공식 입장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치권은 사법개혁법안을 둘러싼 법원과의 줄다리기와 함께 향후 전국 판사 의견 수렴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