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스모킹 건 충격 고백”...단역배우 자매, 경찰 대응에 좌절→비극 끝나지 않았다
엔터

“스모킹 건 충격 고백”...단역배우 자매, 경찰 대응에 좌절→비극 끝나지 않았다

박지수 기자
입력

어둔 회색빛의 스튜디오. 드라마 보조 출연을 하게 된다는 작은 기대에서 시작된 어느 자매의 이야기가 ‘스모킹 건’을 통해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양소라 씨와 소정 씨,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로 평범한 일상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이 자매가 마주한 현실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다. 조용하고 모범적인 모습으로 가족 곁을 지키던 소라 씨는 여동생과 함께 드라마 현장에 발을 들인 뒤 삶의 리듬을 완전히 잃어갔다.

 

시간이 흐르며 동생이 먼저 일을 그만두자, 소라 씨의 변화는 가족들도 감지할 수밖에 없었다. 방 한편엔 ‘죽고 싶다’는 솔직한 고통의 메모가 쌓여 갔다. 자신을 옥죄던 두려움의 실체는 충격적이었다. 촬영장 ‘반장’이라 불린 관리자와 현장 인물 12명에게 반복적으로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고백은, 상처의 색을 더 짙게 칠했다. 회식 자리 술자리부터 버스, 모텔까지 반복된 범행. 반장들은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뺏고 3일간 감금하는 등, 이 자매에게 가해진 현실은 고통 그 자체였다.

KBS2 ‘스모킹 건’
KBS2 ‘스모킹 건’

절망 속에서 어머니는 딸과 함께 어렵게 신고를 택했으나, 두 사람을 맞이한 것은 무책임한 냉담함이었다. 담당 형사는 피해 청소년에게 “가해자 성기를 그리라”며 상상할 수 없는 2차 가해로 고통을 더했다. 모녀의 손끝으로 겨우 써 내려간 고소장은 진실의 무게 아래 움츠려졌고, 잇따른 수사기관의 외면에 결국 소라 씨는 고소를 취하했다. 기억의 파편을 꺼내어 진실을 말하는 일이 오히려 더 큰 벌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의 시간은 더욱 처절했다. 신고 포기가 남긴 허탈함, 그리고 2년 뒤 소라 씨의 극단적 선택. 징글거리는 비극의 문은 한 번 더 열렸다. 언니를 보조 출연의 세계로 이끈 것이 전부였던 소정 씨 역시 불과 6일 만에 뒤따랐고, 자녀들의 잇따른 비극에 쓰러진 아버지도 가족 곁을 떠나야만 했다. 살아남은 어머니는 성폭력 피해 이후의 싸움,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의 이중 고통을 토로하며 진실을 향한 마음을 힘겹게 꺼냈다.

 

‘성폭행 당했다고 모두가 세상을 떠나는 건 아니다. 제 딸을 죽인 건 경찰이다’라는 어머니의 절규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돼 남았다. 프로그램 ‘스모킹 건’은 이번 사건을 통해 연예계 현장 뒤편의 어둠, 그리고 무관심 속에 스러져 간 가족의 이야기를 현장감 있게 전달했다. 가해자가 남긴 상처보다 더 깊게 패인 사회의 차가운 벽은 보는 이들에게 먹먹한 감정의 파동을 남긴다. 해당 방송은 지난 22일 밤 안방을 찾았으며, 가려진 진실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박지수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스모킹건#단역배우자매#성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