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건설노동자 사망·맨홀 질식 참사”…반복되는 산업재해에 제도 개선 목소리
건설현장과 제조업 등 산업 현장에서 폭염과 맨홀 질식 사고 등 심각한 산업재해가 잇따르며 근본적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복되는 열사병과 유독가스 중독 사고는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 정부와 기업 모두 현장 중심의 실질적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9일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온열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입은 58명 중 31명이 건설업 종사자였다. 이는 전체 온열질환 산재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지난 7일에는 경상북도 구미시 아파트 공사장에서 베트남 국적의 20대 하청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슷한 재해는 제조업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5월 4일 오전 9시 44분,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천일제지 공장 맨홀에서 5명의 작업자가 유독가스에 질식해 2명이 숨지고 3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인을 황화수소 중독으로 발표했다. 사용하지 않는 탱크 폐쇄 미비 등 작업 절차의 허술함이 드러났으며, 경찰은 현장 책임자 2명을 입건하고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와 건설업계는 폭염·온열질환 예방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편의시설 부족과 불충분한 휴식 보장 등 근본적 현실 개선 요구가 크다. 포스코이앤씨, DL이앤씨 등 주요 건설사는 자체 지침과 비상 대응반을 운영하고있으나 ‘실효성 결여’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건설노조는 여름철 폭염 법제화와 실질적 관리 방안 마련을 촉구하며 국회 기자회견까지 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6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폭염 등 기상재해 건강장해 대책 수립을 의무화하고, 체감온도 31도 이상 공간을 ‘폭염 작업’으로 지정해 온도·습도 기록 및 보관을 명시했지만, 현장 적용과 관리 측면의 취약성은 여전히 지적되고 있다.
시민사회 및 정치권의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천일제지 맨홀 참사 직후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며, 사업주와 책임자에 대한 법적 책임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부는 고위험 사업장 긴급 점검과 강도 높은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회에선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관련 법 개정 시도가 지속되고 있으나, 상임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지연되는 등 입법 과정에서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현장의 밀폐시설, 건설 현장 등 고위험군에 대한 안전관리 의무 강화와 실질적 점검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한편, 기업과 정부 일부는 국제표준인 안전보건경영시스템(ISO 45001) 인증 등 체계적 관리 개선에 나섰다. 유진소닉 등 일부 사업장은 관련 시스템을 도입해 현장 안전관리 역량을 높이고 있다.
폭염, 맨홀 질식, 온열질환 등 산업현장 내 인명 피해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부·기업·노동계 모두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데 공감이 모인다. 해당 사고들은 구조적 문제 여부를 두고 후속 조사가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