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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구글 제미나이 도입”…시리 대혁신 승부수에 생태계 재편 신호

박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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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구글의 초대형 인공지능(AI) 모델 ‘제미나이’를 자사 AI 음성비서 시리(Siri)에 적용하기 위해 연 10억 달러 규모의 기술 계약을 추진 중이다. 이로써 스마트폰 AI 생태계의 권력지형이 급격히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도적 자체 AI 전략을 내세웠던 애플이 구글의 1조2000억 매개변수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시리의 지능 업그레이드에 나섰다는 점에서 업계는 빅테크 간 AI 주도권 경쟁이 새로운 전환점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애플은 2025년 봄까지 구글의 맞춤형 제미나이 모델을 시리 전면 개선에 활용할 계획이며, 연간 약 10억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애플 내부 모델은 클라우드 기반 1500억개, 장치 내 30억개 매개변수 모델에 머물러 있었으나, 제미나이 도입으로 최대 1조2000억개 매개변수의 복잡성과 정교함을 시리에 접목할 수 있게 됐다. 매개변수는 AI의 학습능력과 정보처리 수준을 결정하는 핵심 척도다. 미세한 맥락이해와 자연언어 처리, 다단계 작업능력 등에서 구글 모델이 애플 자체 모델을 압도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번 애플·구글 간 계약은 단순 기술 도입을 넘어, 글로벌 AI 시장에서 대형 테크 기업들이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하며 기술 플랫폼을 고도화하는 움직임의 상징적 사례로 해석된다. 삼성전자 등 경쟁사들이 이미 구글과 연계해 갤럭시 AI 기능을 강화한 것과 유사한 행보다. 하지만 애플은 한발 더 나아가, 제미나이 모델을 자사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 서버에서만 작동하도록 설계해, 구글이 사용자 데이터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방어막을 쳤다. 애플 고유의 데이터 프라이버시 정책을 유지하며, 외부 AI 도입과 사용자 보호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방식이다.

 

기술 협력 배경에는 AI 모델 평가에서 기능보다 가격 조건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앤트로픽 등 경쟁 AI 기업의 모델도 후보에 올랐으나, 구글이 기존 파트너십과 합리적 가격을 제시해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구글은 이미 검색 엔진 기본 옵션 유지를 위해 애플에 연간 200억 달러를 지불 중이다. 이번 제미나이 도입으로 양사 간 전략적 협력이 한층 더 강화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구글 제미나이 기반의 시리가 챗GPT, 클로드 등 글로벌 최상위 AI 서비스들과 대등한 수준의 질의 응답, 앱 간 복합 작업수행, 맞춤형 요약 기능 등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한다. 시리의 고도화가 글로벌 모바일 AI 플랫폼 경쟁의 판도를 바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애플은 이번 협력을 공개적으로 강조하기보다 ‘애플 인텔리전스’라는 자체 브랜드로 개편된 시리 기능을 선보일 계획이다. 올해 선보이려던 신형 시리는 아키텍처 미흡으로 출시가 지연됐고, 향상된 버전은 iOS 26.4 업데이트와 함께 2025년 봄에 공식 도입될 예정이다.

 

애플 내부적으로도 클라우드 기반 1조개 매개변수 규모의 자체 AI 모델을 개발 중이다. 업계에서는 2026년 이후에는 제미나이 의존도를 줄이고, 궁극적으로 자체 솔루션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애플의 시리 혁신이 AI 기술력만이 아닌 빅테크 간 협력 구조, 데이터 보호 기준, 글로벌 시장 주도권 등 다면적 과제와 맞물려 있다고 분석한다. “AI 플랫폼 생태계 주도권과 개인정보 보호, 자사 솔루션 육성이 향후 시장의 핵심 변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박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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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구글#제미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