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응고제 중단 시 위험 87%↓”…세브란스, 심방세동 치료 가이드라인 흔들
경구 항응고제 복용 중단이 심방세동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정보영·김대훈 교수팀이 국내 18개 병원에서 840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전향적 분석에서, 전극도자 절제술 후 심방세동이 재발하지 않으면 항응고제를 끊는 편이 오히려 뇌졸중과 중대한 출혈 위험을 크게 낮추는 것으로 드러났다. 업계는 이번 연구를 글로벌 가이드라인 수정 논의의 분기점으로 본다.
연구팀은 2020년 7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전극도자 절제술을 받은 심방세동 환자 중 1년 이상 부정맥이 재발하지 않은 환자 840명을 대상으로, 경구 항응고제를 계속 복용한 군(A군)과 복용을 중단한 군(B군)을 비교했다. 24개월 추적 관찰 결과, 항응고제를 중단한 B군의 주요 뇌졸중·출혈 사고 발생률이 0.3%로, A군(2.2%)보다 약 87.5% 낮았다. 특히 중대한 출혈은 B군에서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기존에는 시술 성공 후에도 혈전(피떡) 위험 우려로 항응고제 복용이 국제 가이드라인으로 유지돼 왔다.

전극도자 절제술은 심장 내 부정맥 주원인 부위에 카테터(가느다란 관)를 삽입해 고주파 열, 냉각, 펄스자기장 등 에너지로 병변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심장 내 혈류 정체로 혈전 생성 가능성이 높아져, 시술 전후 항응고제(OAC) 투여가 필수였다. 그러나 절제술 후 심방세동이 재발하지 않으면 추가 혈전 위험이 현저히 감소하는 것이 최신 분석으로 확인됐다. 항응고제는 뇌·위장관 등 주요 장기 출혈 부작용이 있어, 약 복용이 불필요할 경우 오히려 중단이 안전하다는 것이 이번 데이터의 핵심이다.
뇌졸중·색전증 예방과 출혈 부작용 사이 균형을 두고, 시술 후 항응고제 유지 여부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미국·유럽을 포함한 해외 임상에서도 여전히 보수적 지침이 지배적이지만, 이번 논문은 '심장 정상 리듬 유지 시 약 중단이 더 이롭다'는 근거를 정량적으로 제시한 점에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미국 의료계에서도 'JAMA' 게재를 계기로 후속 가이드라인 개정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외 심장학계는 "질병 특성과 개인별 상태에 맞춘 치료전략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연구팀은 엄격한 환자 선별·관찰이 전제된 결과임을 언급하며, 임상현장에선 개별화 진료와 함께 가이드라인 정비 등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방세동 환자의 전극도자 절제술 시행 후 장기 항응고제 복용에 대한 새로운 임상 근거가 제시되면서, 정부와 보험당국의 치료 기준 및 안전성 검토 작업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는 이번 연구가 신약 처방, 보험 적용, 원격 모니터링 등 특화 의료서비스 확산과도 연결될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