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적 비핵화는 사실상 핵군축 협상”…문정인, 이재명 정부 대북정책에 현실적 한계 지적
북핵 대응 전략을 둘러싼 현실적 한계와 대외정책 논의가 다시금 부각됐다. 문정인 연세대학교 석좌교수는 9월 4일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 대북정책 과제와 전망’ NK포럼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동결-감축-폐기’ 단계적 비핵화론을 정면 분석했다. 전문가와 정부 외교안보 라인 사이에서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실질적 접근 가능성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문 석좌교수의 평가는 정치권에 신선한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문정인 석좌교수는 “일단 (핵무력 확대를) 중단하고, 감축하고, 중장기적으로 폐기해 나가는 과정”이라며 “표면적으로는 비핵화 협상이고, 실질적으로는 핵군축 협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핵시설, 핵물질, 핵운반 수단의 폐기는 감축과 연계된 것”이라며, 실제 북한은 감축에 응하더라도 최소한의 핵 자위력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특히 문 교수는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북한과 처음부터 합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짚었다. 이 관점에서 단계적 비핵화가 진행돼도 북한은 핵억지력을 인정받으며 협상장에 나설 것이고, 결국 그 본질상 ‘핵군축 협상’으로 귀결된다는 핵심 평가다.
이와 관련해 “실사구시에 기초한 실용적 접근”임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저항이 매우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한미일 3국이 오랫동안 비핵화를 공식 입장으로 삼아 왔기 때문에 “기존 비핵화 틀을 핵군축 플랫폼으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현실적 난관을 언급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과 외교력,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둘러싼 국제 정세 변화에 대해서도 문정인 교수는 “종전 협상이 지연된다면 북한이 단기간에 대화에 나올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이재명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모색한다면 “일방적, 자발적 양보를 통해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문 교수는 남북대화가 재개될 조건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북한의 ‘2개 국가론’ 선언을 언급하며, “평화적인 두 국가 관계가 되려면 우리 헌법 3조와 4조를 손봐야 한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라 판단했다. 실제로 헌법 3조(영토 규정)와 4조(자유민주적 통일 방침) 개정 문제는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의 쉽지 않은 과제로 꼽혔다.
정치권에서는 문 교수의 ‘핵군축’ 해석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진보 진영 일각은 비핵화 협상 실효성 제고를 위한 현실적 접근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지만, 보수 성향 전문가들은 기존 동맹 구조와 국민 여론을 감안할 때 정책 추진에 큰 저항이 따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포럼을 통해 선명해진 ‘단계적 비핵화’ 해석과 그에 따른 실질적 한계는 앞으로 이재명 정부의 대북 외교 전략의 방향, 국민적 합의 도출 과정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한미일 공조 속에서 현실적 대북 해법 마련을 지속 모색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