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낀 더위 속 한옥 산책”…전주에서 전통의 멋을 거닐다
구름이 많은 여름날, 전주 거리를 걷는 여행자가 부쩍 늘었다. 예전엔 그저 옛 동네로 생각되던 곳이, 요즘은 전통의 멋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산책길로 사랑받고 있다.
전주한옥마을 골목엔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고운 기와지붕 아래를 거닌다. 사실, 신고 다니기 편한 신발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모두가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싶어서다. 마을 곳곳에는 직접 만든 공예품과 정성 가득한 먹거리, 한옥의 정취를 배경 삼아 남기는 기념사진 풍경이 일상이 됐다.

이런 현상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최근 전주를 찾는 휴가객 중 상당수가 ‘찐한 역사 체험’에 초점을 둔다고 답했다. 한옥마을 중심에 자리한 전주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된 곳으로, 고요함과 웅장함이 어우러진 산책길이 인상적이다. 붐비지도 썰렁하지도 않은 경기전 일대는, 중년 부부부터 젊은 여행자까지 저마다 다른 감성으로 걷기에 좋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느린 여행, 맴도는 시간의 가치’로 해석한다. 지역문화 해설가 김진희 씨는 “전주는 단순히 오래된 도시가 아니라 삶의 결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특별한 무대”라고 표현했다. 한옥 처마에 걸린 바람종 소리조차도, 현대의 일상에선 찾기 힘든 위로라고 한다.
경기전 맞은편에 자리한 모주체험여에서는 전통 방식 그대로 모주를 만들고, 계피와 대추 향 그윽한 술을 빚어보는 이색 체험이 이어진다. SNS에서는 직접 빚은 모주를 사진으로 남기는 인증이 인기를 끈다. “은은한 향에 시간까지 느려지는 것 같다”며 현장을 찾은 이들은 남모르게 한숨 돌린다.
비슷한 감상은 국립전주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읽힌다. 박물관을 채우는 수만 점의 유물과 도자기, 선비들의 그림과 글씨 앞에서 여행자들은 살짝 목소리를 낮춘다. “박물관 투어만 해도 하루가 빠르게 간다”는 말이 공감이 되는 순간이다.
‘뜨겁지만 흐린’ 전주의 한여름, 고택 산책을 즐기는 여행자들은 “시작은 더위였으나 마무리는 고즈넉함”이라며 각자만의 소회와 여유를 전한다. 그러니까, 느리고 조용한 전주의 풍경은 트렌드를 넘어 우리 일상에 머물 수 있는 새로운 리듬이자 안식처일지도 모른다.
작고 사소한 산책이지만,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