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자성체 메모리로 AI 고속화”…UNIST, 초저전력 반도체 실마리
교자성체 기반의 차세대 메모리 소자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되면서 AI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예고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신소재공학과 유정우 교수팀과 물리학과 손창희 교수팀은 산화루테늄(RuO₂) 교자성체를 활용한 자기 터널 접합(MTJ) 소자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실제 소자상에서 터널 자기저항(TMR) 신호가 관측됨에 따라, AI 구현에 최적화된 초고속·초저전력 메모리 반도체 실현 가능성이 주목된다. 업계는 이번 연구를 ‘자성체 소재 경쟁의 변곡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해당 성과는 기존 MRAM(자기저항 메모리)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접근으로 해석된다. MRAM은 강자성체로 정보의 0과 1을 기록하지만, 외부 자기장 간섭 문제와 스위칭 속도에서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이 적용한 교자성체는 반발 성질을 지닌 스핀을 가지면서, 강자성처럼 정보를 저장하되 외부 자장(磁場) 효과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아 더 빠른 동작과 높은 신뢰성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연구는 산화루테늄을 원자 단위의 박막으로 합성한 뒤, 절연층과 상부 강자성층을 정밀 증착해 자기 터널 접합 소자를 완성한 점이 눈에 띈다. 소자의 양단 자성층 자화 방향을 전환했을 때 TMR 값이 유의미하게 바뀌는 것이 실험적으로 확인됐다. 이는 기존 소자 대비 스핀 정보 변환 효율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이 기술은 AI 반도체의 메모리 계층에서 고속-저전력 연산 가능성을 높여준다. MRAM 기반 소자는 비휘발성, 저전력성이 강점이지만, AI가 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데에는 아직 스위칭 속도 등 한계가 있었다. 반면 교자성체 기반 신소자는 기존 소재보다 빠른 동작과 우수한 데이터 보존 특성을 갖춰, 인공지능 서버,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엣지 디바이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글로벌 메모리 대기업들도 소재 경쟁과 소자구조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평가다.
교자성체 소자 연구는 미국, 일본 등에서도 활발하게 시도 중이지만, 실질적으로 MTJ 소자에서 유효 TMR 신호를 관측한 사례는 드물다. 이번 UNIST 연구진의 성공은 국내 기술력이 국제 자성체 반도체 경쟁에서 한 걸음 앞서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주목된다. 다만, 교자성체의 완전한 상용화를 위해서는 터널 자기저항 특성이 더욱 뚜렷한 소자 구현, 양산 공정 안정성 검증, 국제 인증 등 추가 과제가 제시되고 있다.
이번 연구는 2024년 9월 시작된 ‘한계도전 R&D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소재 합성과 소자 제작·물성 측정까지 약 1년 만의 성과다. 한계도전 R&D는 기존 한국형 연구지원 체계에 ‘고위험-고파급’(high-risk, high-impact) 과제를 신속하게 투입하는 프로그램으로, 실제 미국 DARPA 모델을 벤치마킹해 설계됐다. 이로 인해 소재 탐색부터 소자 구현까지 신속하게 전주기 연구가 가능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번 성과가 향후 반도체 생태계의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한국연구재단 김동호 책임은 “기존 체계로 접근하기 어려운 최전선 소재 분야에 과감히 도전한 점이 이번 K-반도체 진화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의 전환점이 도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이번 교자성체 기반 소자 기술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