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정, 빌런의 경지 위 욕망”…파인 촌뜨기들 신드롬→연기 본능 폭발
환하게 미소 짓던 임수정의 얼굴에 짙은 자신감이 감돌았던 그 날, 배우 임수정은 다시 한 번 연기 인생의 결정적 반환점을 맞았다. 26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만의 발자취로 한국 영화와 드라마계를 수놓아온 그는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에서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이번 작품은 1977년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선을 중심으로, 야망과 탐욕, 그리고 생존의 경계에서 마주하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로, 임수정은 돈과 권력, 살아남기에 대한 집요한 의지로 무장한 양정숙 역을 맡아 또 다른 패러다임의 빌런을 완성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보여주었던 단아함도, ‘장화, 홍련’ 속 미스터리도 이제는 과거의 이름일 뿐, 임수정은 도회적 이미지와 청순함을 거두고 날 선 표정과 매서운 눈빛, 결핍이 만든 냉소까지 자유자재로 오갔다. 데뷔 24년 만에 스스로 “운명처럼 만난 캐릭터”라 회상한 양정숙은 악의 기운이 감도는 첫 등장부터,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솔직한 현실적인 생존자의 얼굴로 돌변했다. 촬영 초반 “아직 눈이 너무 착하다”던 피드백을 들었지만, 이후 메이크업과 보브컷 헤어, 붉은 립스틱으로 내부와 외부 모두를 완전히 환기시키며 가장 강렬한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양정숙은 탐욕 앞에서 미련 없이 돌진하는 인물이다. 돈과 권력만이 삶의 전부인 양정숙의 냉정함, 그리고 드러나는 외로움은 임수정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결단력 있는 대사 톤에서 완성됐다. 반면 오희동(양세종 분)과의 로맨스에서는 상대 앞에 흔들리는 인간적 허점을 슬며시 내비치며, 기존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현실적인 러브라인을 펼쳐냈다.
그는 1970년대 여성상 구현에도 각별한 공을 들였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메이크업, 헤어, 의상팀과 협업해 한 시간 넘는 머리 세팅과 굵고 날렵한 눈썹, 강렬한 입술로 내면을 투영했다. 당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거침없는 욕망을 당당히 그려내는 모습은 “시대를 초월한 여성의 야망”을 대변하며 임수정 만의 또렷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여성 시청자층의 폭발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파인: 촌뜨기들’은 방송가와 온라인 커뮤니티 화제성 1위에 오르며 신드롬에 가까운 반향을 이끌었다. “악역인데 더 멋있다”는 응원부터 “전부 이뤘으면 좋겠다”는 공감까지, 임수정표 양정숙은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선 ‘입체적 빌런’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다. 특히 양세종 등 주연진과의 케미에서 탄생한 앙상블은 기존 멜로드라마와 완전히 다른 진정성을 입혔다는 평가다.
임수정은 1998년 잡지 모델로 데뷔해 2001년 ‘학교 4’로 연기 신호탄을 쏘았다. 영화 ‘장화, 홍련’의 미스터리소녀 수미로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거머쥐었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내 아내의 모든 것’, ‘시카고 타자기’,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등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감성, 강인한 카리스마, 섬세한 감정 연기를 펼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특히 ‘내 아내의 모든 것’로 청룡상 여우주연상을 수상,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대체 불가 배우로 각인됐다.
임수정은 이번 양정숙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 내면의 욕망을 해방했다고 말한다. “연기하면서도 살아 있음을 느꼈고, 스스로 연기에 더 욕심이 생겼다”는 그의 말처럼, 이제는 블랙 코미디 등 또 다른 장르에도 과감하게 도전할 계획이다. 20대의 청순, 30대의 성숙미, 40대의 깊이와 파격을 오가며 변신의 끝을 모르는 그에게 관객들은 ‘믿고 보는 배우’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167cm의 신장, 부드러운 마스크, 단단하고 부드러운 내면 연기로 수많은 수상 경력을 기록한 임수정. 2024년 전속계약 체결로 새 출발을 알리며, 광고, 캠페인,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로 존재감을 확장한다.
여름 내내 N차 시청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파인: 촌뜨기들’의 반환점에서 임수정은 “더 넓은 연기 스펙트럼에 이정표가 됐다”는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획일적인 여성상, 고정된 이미지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파격과 진화를 이어가는 임수정의 여정. 한 시대의 청순 아이콘에서 빌런의 신드롬을 일으킨 지금까지, 임수정의 새로운 ‘욕망’이 어떻게 펼쳐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파인: 촌뜨기들’은 11부작 전편이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지난 8월 13일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