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약 처방, 기준 무너졌다”…위고비 등 남용 우려 커져
비만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의 처방 기준이 의료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임신부와 만 12세 미만 어린이 등 금기 대상자에게도 투약되는 사례가 확인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남용 경향은 약사 및 의료 전문가 사이에서도 우려를 낳고 있으며, 안전성 검증 및 처방 기준 강화를 둘러싼 정책 변화 요구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업계와 의료계는 ‘비만치료제 관리 경쟁’의 분기점으로 이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
최근 공개된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8월까지 비만치료제 위고비의 어린이 대상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점검 건수는 69건, 임신부 대상 점검은 194건에 달했다. 특히 체질량지수(BMI) 30 이상 성인, 또는 동반 질환이 있는 27 이상 성인만을 대상으로 허가된 위고비가, 엄격한 투여 기준을 벗어나 의료현장에서 무분별하게 처방되는 현실이 확인된 것이다. DUR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안전정보를 제공하지만, 건강보험 통계로 집계가 불가한 비급여 약물 특성상 처방 동향 파악에 한계가 있으며, 실제 조제 및 투약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 점도 지적된다.

기술적으로 위고비는 장기 작용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로, 식욕 억제 및 혈당 조절 효과를 가진다. 임상 데이터상 성인 대상의 체중 감량 효과는 입증됐으나, 임신부 및 만 18세 미만에서는 안전성·유효성이 검증돼 있지 않다. 동일 계열의 삭센다(리라글루타이드) 역시 2021년 한 해 동안 어린이와 임신부에 대한 DUR 점검 사례가 각각 67건, 179건으로 집계됐다.
적용 현장에서는 비만과 직결되지 않은 다양한 진료과목 의료기관에서 위고비·삭센다·마운자로 등 비만치료제가 처방되고 있다. 제출된 공급내역 자료에 따르면, 정신건강의학과 2453건, 산부인과 2247건, 이비인후과 3290건, 소아청소년과 2804건 등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일부 진료과목에서는 비만 질환에 대한 전문적 판단 없이 처방이 이뤄진다면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위고비 투약 이후의 이상반응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이후 급성췌장염 151건, 담낭염 143건, 저혈당 44건 등 총 961명의 환자에서 중대한 이상사례가 보고됐으며 응급실 내원도 159건에 달했다. 특히 약사법상 전문의약품 임의 처방에 대해선 처벌 규정이 미흡해, 정부와 식약처의 관리 사각지대가 드러났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사용이 급증하며 안전성 관리와 보험·규제 논의가 활발하다. 미국 FDA 등에선 연령·임신 등 투약 제한을 명확히 고지하고 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경고 표시 및 DUR 기반 모니터링 외 별도 통제 수단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와 정책 당국 모두 “비만치료 신약의 확산 속도에 맞춰 실제 투약 현장에서의 안전성 검증 및 처방 기준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남희 의원실도 안전처방 가이드라인 마련과 현장 점검의 행정 개입을 주문했다.
산업계는 이번 사례가 실제 시장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약물 남용 방지, 환자 위험 최소화, 혁신 치료제의 합리적 활용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균형점 마련이 제약·바이오산업의 과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