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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하늘 아래 걷는 궁궐 산책”…수원 화성의 고즈넉함, 낯선 위로가 되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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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흐린 날, 우산을 들고 천천히 궁궐을 걷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쓸쓸할 것만 같던 흐리고 적당히 젖은 길 위에서, 조용히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특별한 평온이 일상 속에 번진다. 예전엔 화성행궁을 단순한 관광지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빗방울 사이로 옛 왕실의 품격과 도시의 고요함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휴식의 풍경이 됐다.

 

흐린 가을비 내리는 10월 수원의 모습은 낯익으면서도 새롭다. 오전 기온 17도 선, 소리 없이 내리는 비가 지난날의 흔적을 두른 듯 궁궐과 호수를 감싸고, SNS에는 조용한 산책길 인증 사진이 이어진다. 궁궐을 걷거나 호수 주변 벤치에 앉아있는 이들의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사진을 좋아하는 대학생 김지은(27) 씨는 “비 오는 날엔 사람들이 적어서 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며 “화성행궁의 단청이며 고풍스러운 복도 사이로 빗물이 흐르는 곳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털어놨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수원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수원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비 오는 날 문화유산 방문율이 최근 2년 사이 12% 증가했다. 자연을 그대로 느끼며 고요하게 시간을 보내려는 젊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꾸준히 늘고 있다. 화성 동북포루로 불리는 방화수류정, 광교호수공원 등 수원의 대표적 정취 명소들도 재조명되는 중이다.

 

관광 트렌드 칼럼니스트 정호진 씨는 “예전과 달리 요즘 젊은 세대는 단순 ‘방문’을 넘어 일상에서 감정 회복과 내면의 휴식을 중시한다”며 “특히 흐린 날씨, 궁궐의 고요함, 자연의 풍경 같은 일상적인 장면에서 마음의 속도를 늦추려 한다”고 설명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비 올 때 궁궐 산책하는 게 제일 좋다” “광교호수공원 걷다 보면 어떤 고민도 잠시 사라진다”는 공감 글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퍼지고 있다. 빗길에 조심히 걸으며 나만의 음악을 듣거나, 연못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감상하기 위해 일부러 비 오는 날 산책을 나서는 이들도 많다. “추억을 남기기 좋은 풍경”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아서 혼자라도 꼭 가보고 싶다”는 후기 또한 꾸준하다.

 

수원의 작은 궁궐과 호수, 그 속에서 흐르는 빗물. 사소한 변화지만 그 안엔 한껏 달라진 삶의 태도가 스며 있다. 혼자만의 느린 걸음으로 고요함을 음미하는 일, 그 순간이 ‘쉼’의 다른 이름이 되고 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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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행궁#광교호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