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숲과 옛 돌담길 사이”…순천이 선물하는 여름의 시간
여름이 한창 무르익는 7월, 순천으로 향하는 여행자가 늘고 있다. 예전엔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만 찾던 남도의 작은 도시였지만, 이제는 일상 속 느린 숨과 다정하게 스며드는 순천의 풍경이 일상을 달래는 안식처가 됐다.
순천의 뿌리이자 얼굴인 곳은 단연 순천만이다.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인 순천만국가정원에는 세계 곳곳의 정원과 꽃길이 줄지어 있다. 아이와 손을 잡고 걷거나, 잠깐 벤치에 앉아 멍하니 갈대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인접한 순천만습지에서는 오랜 시간 쌓인 갯벌 위를 바람이 쓰다듬고, 드문드문 보이는 철새소리와 함께 자연의 낮은 호흡이 마음을 감싼다. 현지에 머문 김수연(38) 씨는 “이곳은 풍경이 일상을 잊게 만든다”며 “계절마다 달라지는 정원의 느낌이 다가올 때마다 그저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표현했다.

이런 변화는 통계 속에서도 드러난다. 순천에서는 단체 관광보다는 가족, 연인, 1인 여행객이 즐겨 찾는 추세가 두드러진다. 순천시 관광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순천만국가정원 방문객 중 자발적 개별 방문 비율이 6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잡한 명소보다 ‘천천히 걷고, 머물고, 체험하는’ 시간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역사와 일상이 맞닿은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선암사와 송광사에서는 천년 고찰의 조용함을 만끽할 수 있고, 실제 주민이 살아 숨 쉬는 낙안읍성에선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잊고 있던 옛 가족의 온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어진 남도의 풍경을 끌어안고 있으면 스스로가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 든다”는 여행자 임정우(47)는, “그럼에도 여긴 낯설지 않다”고 고백했다.
순천의 시간은 밤에도 특별하게 흘러간다. 풍덕동 순천 아랫장 야시장에서는 푸드트럭과 거리 공연, 시끌벅적한 먹거리의 향연이 이어진다. 노을이 질 무렵, 해룡면 와온해변에서 바라보는 붉은 하늘은 “여행에 온 게 맞나?” 싶은 묘한 설렘을 남긴다.
SNS에는 “낙안읍성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을 거스른 듯하다” “드라마 촬영장에서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 같은 감상들이 쏟아지고 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순천의 여름밤, 첫사랑처럼 아련했다” “굳이 목적 관광이 아니어도 좋다. 그냥 하루를 여기에 두고 싶다”라는 글이 이어진다.
여행 칼럼니스트 박솔희는 “순천의 매력은 화려한 인공미가 아닌, 자연과 시간이 어우러진 일상성에 있다”고 해석했다. “스스로에게 한 템포를 쉬어주고 싶은 이들에게 순천은 ‘머무는 여행’을 내밀하게 건넨다”고도 전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순천의 풍경을 걷는 일은 일상의 숨을 다시 내쉬는 연습과도 같다. 여행은 끝났지만, 그때의 마음은 지금도 나와 함께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