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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아래 걷는 하루”…경주, 흐린 날씨에 더 어울리는 고즈넉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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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아래 걷는 하루”…경주, 흐린 날씨에 더 어울리는 고즈넉한 여행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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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늘 떠남이었지만, 오늘 경주에서는 머무르는 일이 더 어울린다. 최근에는 강한 햇살 대신 흐린 하늘 아래 산책을 즐기는 여행자가 부쩍 늘었다. 더위를 피해 숨죽인 맑은 공기 속, 사람들은 경주의 고즈넉한 유적지를 천천히 거닌다.

 

경주 대릉원에 도착하면 푸른 잔디와 봉긋한 고분들이 조용히 손짓한다. 역사의 무게가 담긴 공간에 흐린 하늘이 더해지면, 욕심 없이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인근 불국사는 나무 사이 사이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고요함이 깊어진다. 올해 경주 기온은 오전 25도대에 머물렀고, 체감온도는 27도로 걷기엔 부담 없는 날씨다. 습도도 70% 수준이라 미끄러지듯 산책하기 좋다. 산 중턱 석굴암은 한층 더 시원해서, 한 시대를 견뎌온 돌의 울림과 여름 바람이 교차한다.

사진 출처 = 경주 대릉원 제공
사진 출처 = 경주 대릉원 제공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흐린 날씨에 경주를 찾는 이들의 만족도가 맑은 날씨와 견주어 결코 낮지 않았다. 야외 유적뿐 아니라, 국립경주박물관처럼 실내 공간도 인기가 높다. 소나기가 내릴까 걱정되는 날엔 신라의 역사를 찬찬히 둘러볼 수 있어 잠깐의 휴식처가 된다.

 

여행 칼럼니스트 김지은 씨는 “구름 많은 날씨가 오히려 경주의 고풍스러움과 여유를 강조한다”며 “이런 느린 여행이 진짜 경주와 만나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SNS에도 “흐린 날의 월지 야경이 잊히지 않는다”, “사진이 훨씬 고즈넉하게 남는다”는 방문 후기가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경주 동궁과 월지를 저녁 무렵 찾았을 때,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조명이 물가에 번져 어슴푸레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날이 맑지 않아도, 그 덕분에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뜨거운 햇볕의 부담 없이, 그냥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시간이었다.

 

흐린 날, 계획 없이 막 걷는 경주 여행에는 특별한 목적지가 필요 없다.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는 곳에서 숨을 고르고, 옛 도시에 스며든 시간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름 저녁, 구름 아래에서 시작된 산책. 작고 사소한 선택 같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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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대릉원#불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