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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편에 선다”…라브로프, 한미일 군사협력 견제하며 남북관계 압박
정치

“북한 편에 선다”…라브로프, 한미일 군사협력 견제하며 남북관계 압박

오태희 기자
입력

남북관계를 둘러싼 강대국의 외교력 충돌이 본격화되고 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7월 12일 북한 원산을 방문해 공식 회담을 연 자리에서 이재명 정부의 남북 관계 개선 시도를 평가절하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거론하며 남측을 거세게 압박했다. 최근 북러 밀착 분위기와 맞물리며 러시아가 남북관계의 새로운 변수가 됐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라브로프 외교장관은 이날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의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틀 내에서만, 그리고 북한이 관심을 둔 문제에 대해서만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대화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는 구체적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온 한반도 긴장 완화 노력에 미흡함을 지적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특히 "군사 훈련이 증가하고 있는 한국·일본·미국의 삼각 동맹이 발전하는 가운데서 한반도의 평화적 안정이 위협받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이 오히려 동북아 긴장 요인임을 러시아 외교수장이 공식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하고, 대북 확성기 방송도 중단하는 등의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는 한미일 군사 협력 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남북대화 진전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러시아 측이 방북 중 해당 발언을 쏟아낸 데 대해 외교가에선 러시아 고유의 정책인지, 북측 입장을 대변한 것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양측 공동 발표문에도 러시아가 북한의 '현 지위' 부정 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명시했다. 공보문에서 러시아 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 지위를 부정하려는 임의의 시도에 단호히 반대"라며 "국가의 안전과 주권적 권리를 수호하려는 조선 측의 정당한 노력"을 적극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 표현에 대해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신호라 해석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라브로프의 입을 빌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한 셈"이라면서 "러시아가 앞으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와 남북문제의 주도권 강화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함의가 있다"고 진단했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연구센터장도 "러시아가 남북 및 미북 대화에서 사실상 중재자 지위를 자처한 것"이라 해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러관계가 냉각된 가운데, 이번 라브로프 장관의 방북 및 발언은 대러시아 관계 관리의 중요성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남북 협상에 러시아 변수가 본격적으로 부상하며 정부의 전략도 재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치권은 남북관계 해법을 둘러싼 외교 지형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향후 북러 정상회담 등 추가 동향을 주시하며, 한반도 정세 안정화를 위한 다각적 외교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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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브로프#이재명#러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