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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역사인식 계승”…이시바 일본 총리, 한일 정상회담서 ‘반성’ 직접 언급 피해
정치

“역대 역사인식 계승”…이시바 일본 총리, 한일 정상회담서 ‘반성’ 직접 언급 피해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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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식을 둘러싼 외교적 신경전이 한일 양국 정상이 만난 도쿄 회담장에서 다시 불거졌다. 23일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자국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역사 문제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피해갔다. 한편 이달 15일 일본 패전일 추도식에서 ‘반성’을 언급했던 그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양국의 해묵은 갈등이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확대 정상회담 모두발언과 공동 언론발표에서 1998년 발표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다만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고 밝히는 데 그쳤고, 지난 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일본 총리로는 13년 만에 사용한 ‘반성’이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자”고 제안했으나, 일본 측이 적절한 수위 조절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정치권과 외교가에서는 이번 이시바 총리의 역사관 표명이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작년 한일 정상회담 당시 보였던 태도와 다르지 않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기시다 전 총리는 2023년 3월, 윤석열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마련한 직후 도쿄 회담에서 “1998년 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반성’과 ‘사죄’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 양국 관계의 중요한 분수령으로 꼽히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일본이 한때 한국 국민에게 식민지 지배로 심각한 고통을 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문서다. 그러나 일본 보수 진영은 이후 ‘아베 담화’ 등에서 사죄와 반성의 책임을 미래 세대에 전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전후 80주년 패전일이던 이달 15일,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전몰자 추도사에서 “전쟁의 참화를 결단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그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이제 다시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민당 역대 총리들이 2013년부터 꺼렸던 ‘반성’ 표현을 부활시키며 일본 내 역사인식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기조 변화 없이 기존 원칙만 재확인했다.

 

일본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시바 총리가 최근 참의원 선거 패배 이후 당내 보수파로부터 거센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점이 회담 발언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내 강경 보수 세력은 2015년 ‘아베 담화’로 역사의 평가를 마무리짓고, 추가 사죄나 반성 표명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일 정상회담의 기대와 달리, 일본 정부가 그간의 역사인식 입장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확인되면서, 양국의 역사 문제 논의가 다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실은 이시바 총리의 패전일 추도식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힌 가운데, 정부는 앞으로 한일관계 특별위원회 등을 통해 추가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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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시게루#한일정상회담#기시다후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