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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스카이 서브”…장윤창 교수, 타계 소식에 멈춘 코트→배구계 애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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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스카이 서브”…장윤창 교수, 타계 소식에 멈춘 코트→배구계 애도 물결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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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의 함성 아래, 유려한 곡선을 그리던 ‘스카이 서브’의 주인공 장윤창 교수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1980~90년대 한국 남자배구의 황금기를 대표했던 그는, 5월 30일 지병으로 눈을 감으며 선수와 지도자, 그리고 한 시대를 빛낸 전설로 기억된다.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늘 자기관리의 상징이자, 누구나 닮고 싶었던 선배였다는 뭉클한 이야기가 남았다.

 

장윤창 교수는 인창고 2학년 시절 만 17세에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남다른 두각을 드러냈다. 197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일궈낸 그는, 이어진 방콕 아시안게임(1978), 뉴델리 아시안게임(1982)의 연이은 금메달을 견인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은메달까지 더해 이름 석 자는 한국 배구의 ‘성장 서사’ 그 자체였다.

출처=연합뉴스
출처=연합뉴스

1983년 실업팀 고려증권 창단 멤버로 코트를 밟은 그는 왼손 아포짓 스파이커 특유의 속공과 공격력으로 팀의 중심축이 됐다. ‘돌고래’라는 별명처럼 늘 부드럽고 강렬한 플레이로 팬들의 찬사를 이끌었다. 특히 한국 남자배구에 처음 ‘스카이 서브’를 선보인 인물로, 대통령배 초대 챔피언을 비롯해 고려증권이 총 6회 우승을 달성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장윤창 교수는 선수 시절을 지나 미국 조지워싱턴대 석사, 한국체육대 박사 과정을 마친 뒤 경기대 교수로 후학을 길러냈다. 대한배구협회 강화이사,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배구 발전에도 헌신했다. 동료이자 친구였던 박주점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장은 “1980년대 최고의 남자배구 스타”라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평생 몸과 마음을 절제하며 선수로, 스승으로 모범을 보여온 장윤창 교수. 그러나 지난해 말 위암 말기 진단 후, 끝내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팬들 사이에는 ‘배구 코트 위의 역사’라는 별칭이 다시 한 번 회자되고 있다.

 

살아온 시간이 강물처럼 흐른 뒤에도, 남은 이들의 기억은 더 오랫동안 머문다. 장윤창 교수의 조용한 이별에, 다시 한 번 ‘스카이 서브’가 하늘을 그린다. 한국 남자배구와 후학들이 가슴으로 지켜볼 이 이야기는 살아있는 전설의 진가를 느끼게 한다.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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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창#고려증권#한국남자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