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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씨, 바닷가와 산사”…포항의 느린 여행이 주는 위로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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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계절이 바뀌었다. 비오는 날 포항을 거니는 이들이 많아졌다. 예전엔 맑은 날씨만이 여행의 시작이었다면, 지금은 빗속 풍경이 전하는 느긋함을 찾아 흐린 하늘 아래로 나선다. 사소한 변화지만, 그만큼 여행에 담는 의미가 달라졌다.

 

13일 경북 포항은 18.5도의 촉촉한 공기와 붉지 않은 흐림으로, 그 자체가 조용한 초대장이 된다. 바다와산, 옛 골목과 산사가 거기에 응답하듯 조금 더 차분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동쪽 끝 호미곶. 호랑이 꼬리라는 별칭답게 끝없이 펼쳐진 암석 해안과 거친 파도가 무거운 하늘과 어울린다. 손에 카메라를 든 여행자들은 조용히 바다의 소리를 담고, 바람결 사이로 잠시 숨을 고른다. 국립등대박물관에서 등대 이야기에 빠지는 이들도 빗물 아래에서 야외 전시를 천천히 걷는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포항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포항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의 낡은 목재 건물들이, 오후의 습도를 머금은 채 고요하게 서있다. 오래된 벽과 창문 너머로 과거와 현재가 맞닿고, 커피숍에 앉은 여행자는 “어쩐지 시간이 조금 느려진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SNS에는 가로등과 길, 비에 젖은 돌담 사이를 걷는 짧은 영상들이 늘어나고 있다.

 

숲으로 방향을 틀면 내연산 자락의 보경사가 흐린 날씨에도 더욱 빛난다. 천년 고찰의 경내, 비에 젖은 탱자나무, 그리고 산사길에는 지금만 느낄 수 있는 차분한 고요가 머문다. 등산객과 템플스테이 참가자 모두 “고요함 속에서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을 공유했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흐린 날씨에도 지역 관광지 방문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전통시장, 산사, 바닷가 등 실내외를 막론한 다양한 장소에서 ‘느린 여행’을 택하는 이들의 비중이 점차 늘어간다.

 

여행심리 전문가 김현아 씨는 “빗속의 여행은 풍경을 더 가까이 느끼게 한다. 빠른 이동이나 화려한 관광지보다, 자신만의 페이스로 천천히 짚어가는 경험이 삶의 휴식이 된다”고 진단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포항의 느린 바다는 마음까지 차분하게 한다”, “혼자 걷는 산사길이 최고의 힐링”이라는 의견이 많다. 누군가는 “예전엔 활동적인 여행만 좋아했는데, 이제는 조용히 머무는 게 더 좋다”고 고백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포항의 흐린 하루, 바다와 산, 낡은 골목길에서는 여전히 조용한 위로가 흐른다. 여행은 끝나도, 그때의 마음은 지금도 우리를 걷게 한다.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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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호미곶#보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