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10조 삭감, 대통령실 지시 있었다”…배경훈, 대통령실 주도 예산조정 인정
연구개발(R&D) 예산 대폭 삭감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청와대 갈등이 표면화됐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대통령실의 직접적인 R&D 10조원 삭감 지시를 인정하며, 예산 조정이 대통령실 주도로 추진됐다는 사실이 13일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해당 사안에 대해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며, 과학기술계 반발과 정치권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배 부총리는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의원의 질의에 대해 “최상목 당시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주요 R&D를 10조원으로 삭감하라고 지시했으며, 대통령실에 끌려간 측면이 있다”고 답변했다. 그는 이어 “혁신본부에서도 필요성에 대해 계속 보고했고, 벽돌쌓기 방식으로 예산 조정이 주도된 것은 경제수석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기정통부가 자체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처음에는 전년 대비 증액된 25조4천억원 R&D 예산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6월 28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R&D 예산 나눠먹기’를 문제 삼아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고, 7월 6일 최상목 수석이 주요 R&D 예산을 10조원으로 줄이라고 지시했다. 최 수석의 추가 지시에 따라 ‘벽돌쌓기식’ 증액안이 검토됐으나, 7월 20일 대통령실 내부 토론회에서 최종적으로 17조4천억원, 이후 과기정통부의 설득 끝에 21조5천억원 주요 R&D 예산안이 만들어졌다.
정치권에선 R&D 예산 삭감의 출발점이 2023년 4월의 한미정상회담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실제 보고서에는 한미 기술동맹, 글로벌 R&D 협력 확대 기조에 따라 관련 예산 조정 논의가 시작됐다는 설명이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주희 의원이 “R&D 삭감 출발점이 미국 순방 아니냐”고 묻자, 배 부총리는 “순방 이후 글로벌 R&D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예산 확보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인정했다.
정당별 입장도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치적 의도에 따른 대형 삭감’이라며 강하게 비판했으며, 대통령실은 “합리적 예산심의였고 국제협력과 재정 건전성 확보가 목표였다”고 반박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연구개발 경쟁력 훼손 우려와 함께 후속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배경훈 부총리는 “R&D 삭감으로 피해 입은 모든 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발생되지 않도록 과기정통부는 최소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일부 부처 R&D 예산은 8월 초 1조원 이상 증액 지시가 대통령실에서 있었다”고도 설명했다.
이날 국회는 연구개발 예산 심사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으며, 정치권과 과학기술계의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향후 과학기술 R&D 예산 편성 과정에서 보다 투명한 절차와 현장 요구 반영을 검토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