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럴당 62.85달러 하락…사우디 증산 의지에 국제유가 3일만에 반전
지구의 오래된 피, 원유의 시장은 변화와 긴장 속에 또 한 번 굽이쳤다. 6월 첫 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7월 인도분 기준 전일보다 0.56달러 떨어진 배럴당 62.85달러로 숨을 고르며 거래를 마쳤다. 국제 유가의 중추인 브렌트유 역시 8월 인도분 기준 0.77달러 하락한 배럴당 64.86달러에 머물렀다. 이는 5월 30일 이후 처음으로 꺾인 흐름이자, 주요 산유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 투자자들의 반응이었다.
시장의 불안 요인은 명확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의지가 공식화된 것이다. 사우디는 OPEC과 러시아 등 ‘OPEC+’ 연합의 광대한 협의 틀 안에서 8월과 9월, 하루 41만1천배럴 수준의 증산을 희망한다고 알려졌다. 여름 성수기를 정조준한 이 전략은 시장 점유율을 한층 더 키우기 위한 섬세한 방향타다. 이미 4월부터 단계적으로 감산 폭을 줄여온 OPEC+는 5월부터 감산 해제를 가속화했고, 6월과 7월에도 같은 속도의 증산이 이어지고 있다. 증산의 바람은 세계 석유 시장 곳곳에 공급 확대의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공급만큼이나 시장을 뒤흔든 것은 미국 내 휘발유 재고 급증 소식이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5월 30일 기준 주간 원유 재고가 430만4천배럴 감소했다고 밝혔다. 당초 예상을 넘어서는 감소폭이었지만, 정제공장 수요 급증의 흐름과 맞닿아 있었다. 정작 시장을 움찔하게 한 것은 휘발유 재고의 변화였다. 휘발유 재고는 같은 기간 521만9천배럴을 기록하며 1월 이후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애초 시장은 240만배럴의 감소를 예상했으나, 수요의 약세와 공급의 빠른 확대가 맞물리며 예상을 뒤집은 결과가 나타났다. 중간유 역시 423만배럴 증가하며 동반 상승했다.
스위스 UBS의 지오바니 스타우노보 애널리스트는 "정제공장의 원유 수요가 빠르게 늘고 원유 재고는 줄었으나, 중요한 건 그 이후 흐름"이라고 해석했다. "공급 증대에도 불구하고 내재적 휘발유 수요가 약화되면서 정제 제품 재고가 크게 쌓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여름철 여행 수요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조차 소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일본 NLI리서치의 우에노 츠요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캐나다 공급 차질이나 이란-미국 간 핵협상 교착 등 긴장요인에도 OPEC+ 증산이 국제유가의 상단을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지정학적 긴장이 여전히 시장 곳곳에 남아 있지만, 실질적 공급의 춤이 유가를 누르고 있다는 의미다.
국제 유가의 이번 조정은 그 자체로 복합적인 징표다. 공급 확대 의지와 정제 제품 재고 증가는, 여름이라는 계절의 축제마저 지난하게 만드는 공존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다음 행보에 따라 유가는 여전히 출렁일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투자자, 산업계, 그리고 에너지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시선을 고정한 채 변동성의 파도를 맞이하게 됐다.
달라진 국제 유가는 가계의 유류비, 산업 생산비, 소비자 물가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밀려드는 공급 속에서도 휘발유 수요의 회복세가 더뎌진다면, 시장의 균형은 불안 속에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름철 여행 성수기가 다가오는 지금, 소비자의 시야는 여전히 주유소의 가격표와 OPEC+의 움직임에 머물러 있다. 6월 이후 추가 증산 결정과 미국 내 수요 회복 여부가 향후 시장 방향을 가늠할 핵심 분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