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촬영장의 암흑”…그라비아 대표, 침묵 속 단호 부인→피해자 용기 다시 불붙다
화려한 플래시 아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무대는 한순간 아득한 그림자에 잠겼다. 그라비아 대표로 불리던 A씨와 현 제작사 대표 B씨가 법정에서 모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목소리를 냈다. 깊이 침잠한 진실과 맞닿은 그 자리는, 오랜 침묵을 뚫고 용기를 낸 피해 모델들의 목소리로 다시 뜨거워졌다.
이날 첫 재판에서 피감독자 간음,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측 법률대리인들은 각각 살을 에는 듯한 논리로 사실관계를 다툼하며 위력, 위계의 행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 혐의에 대해서도 촬영 동의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혐의 전부를 부인했다. 무고 혐의를 받은 현 대표 B씨 역시 허위사실이 아니며, 고의성도 없었다고 강조하며 진술을 이어갔다.

법정에 선 두 사람은 담담하게 인적사항을 확인하며 국민참여재판은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 측은 전·현직 대표가 관계상 우위를 악용해 총 5명의 모델을 13차례에 걸쳐 성폭행하고, 강제추행은 물론 미성년자에게 음란 영상을 요구한 사실 등을 낱낱이 지적했다. 특히 촬영 현장에서 ‘눈을 감고 느끼라’는 식의 지시가 이어졌다는 구체적 증언은 현장에 팽팽한 긴장감을 더했다.
피해 모델 중 일부는 자신이 고교생이던 시절, 신체 접촉과 언어적 협박이 있었음을 폭로했다. 성인 화보 테스트를 명분 삼은 성 착취물 제작과 영상 소지, 그리고 이를 둘러싼 허위 고소까지, 촘촘하게 이어진 사건들은 엔터테인먼트 산업 이면의 그늘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난해 사건을 세상에 알린 인플루언서는 SNS를 통해 가해자 측의 지속적인 고소, 고발로 겪은 정신적 고통을 털어놓으며, 피해자들의 두려움과 용기가 얼마나 큰 무게를 가졌는지 새삼 느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온라인에서는 피해자들을 향한 응원과 연대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뜨겁게 퍼지고 있다.
한편, 그라비아는 1970년대 일본에서 성인 잡지계 문화로 시작돼 2000년대 들어 연예계 진출의 통로로도 기능해온 바 있다. 이번 재판은 국내 모델 산업의 민낯과 그 뒤에 감춰진 권력 구조, 자정 필요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지고 있다.